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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여운형(呂運亨, 1886년 5월 25일 ~ 1947년 7월 19일)은 한국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외교관·언론인·체육인이며 정치가이다. 호는 몽양(夢陽)이다. 구한말 기독교의 평등 사상을 수용하여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교육·계몽활동에 활동하였다가 1907년 대한협회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안창호의 연설에 감화되어 동생 여운홍(呂運弘)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외교관으로서 1914년 중국에 건너가 신한청년당 당수로 활동하여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기획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김규식 등을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하였으며 1919년 11월 직접 일본을 찾아 담판을 짓기도 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등을 지냈으며 1921년 고려공산당 상하이파와 이르쿠츠파에 모두 관여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 때 안창호, 김동삼과 함께 개조파로 활동했으나 임정을 떠났다. 이후 소련중국을 오가면서 쑨원의 권유로 1924년 중국 국민당에 가담해 국공합작을 통한 중국혁명 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에 활동하였다. 1929년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된 이후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체육인으로서는 조선체육회 회장과 미군정기 군정청 체육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1944년부터는 비밀 지하 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농민동맹을 결성, 해방 뒤 8월 건국준비위원회, 9월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성하였다. 1946년부터는 통일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47년 서울특별시 혜화동 로터리에서 배후가 불확실한 한지근의 저격을 받고 암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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