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말레이시아 관계

대한민국말레이시아는 1960년에 수교하였다. 1960년 2월 23일, 양국(한국 대표 : 김동조 친선사절단장)은 외교관계 수립을 발표하였다.[1], 1962년 5월 콸라룸푸르에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1964년 4월에는 서울에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이 개설되었다.[2] 대한민국의 대(對)말레이시아 수출은 62억7513만USD, 말레이시아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104억6781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말레이시아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21위의 수출국이자 제14위의 수입국이다.[3] 모두 12,690 명(재외국민 12,685 명, 시민권자 5 명)의 한민족들이 말레이시아에 거주(2015년 9월 기준)하고 있다.[4] 말레이시아의 전 총리 마하티르 빈 모하맛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Look East Policy)을 펼쳤다.[5] 이 정책의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장학생을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수교하였으나, 김정남 암살 사건이 말레이시아에서 발생 이후 단교하였다.

대한민국–말레이시아 관계
alt=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의 위치
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
말레이시아의 국기
말레이시아
외교 공관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
사절
대사 대사

정무 편집

역대 주 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 명단[6]
대수 이 름 임기 비고
1 최홍희(崔泓熙)[7] 1962년 4월 ~ 1964년 11월
2 최규하(崔圭夏) 1964년 11월 ~ 1967년 6월 대사 재직 중, 외무부 장관에 발탁됨.
3 갈홍기(葛弘基)[8] 1967년 9월 ~ 1971년 8월 1967년 9월 16일, 대한민국 정부는 갈홍기를 주말레이시아 대사로 임명하였다.
4 김성용(金星鏞) 1971년 8월 ~ 1975년 2월
5 전상진(全祥振) 1975. 2 ~ 1979. 4
6 최호중(崔浩中) 1979. 4 ~ 1983. 1
7 심기철(沈基哲) 1983. 2 ~ 1986.11
8 손장래(孫章來) 1986.11 ~ 1990. 2
9 홍순영(洪淳瑛) 1990. 2 ~ 1992. 2
10 이상구(李常九) 1992. 3 ~ 1995. 2
11 정경일(鄭慶逸) 1995. 2 ~ 1997. 9
12 이병호(李炳浩) 1997. 9 ~ 2000. 7
13 이보민(李瑩敏) 2000. 7 ~ 2003. 6
14 이영준(李英俊) 2003. 6 ~ 2005. 8
15 손상하(孫相賀) 2005. 8 ~ 2007. 8
16 양봉렬(梁峰烈) 2007. 8 ~ 2010. 8
17 이영준 2010. 9 ~ 2013. 7
18 조병제 2013. 7 ~ 2016. 5
19 유현석 2016. 5 ~ 2018. 2
20 도경환 2018. 2 ~ 2019. 5 김영란법 위반이 성립됨에 따라 2019년 5월 귀임 조치를 받고 반년 가까이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가 몽골 대사와 마찬가지로 공석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21 이치범 2019. 11 ~ 현재

박정희 대통령은 1966년 2월 7일,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이스마일 나시루딘(Ismail Nasiruddin of Terengganu) 국왕 및 툰쿠 압둘 라만 총리 등과 환담하였다.[9] 1975년 3월 초, 김동조 외무부 장관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여 압둘 라자크 후세인 총리와 아마드 리라우덴 외무장관을 만났다.[10] 1976년 3월에는 박동진 외무부 장관이 리타우딘 말레이시아 외무부 장관과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11]

경제 편집

대한민국-말레이시아 간 항공노선
거점 도시 공항
IATA
공항
ICAO
거점 공항
이름
항공사 및 상대국 취항지
  서울/인천 ICN RKSI 인천 대한항공(2개) : 쿠알라룸푸르, 코타키나발루
아시아나항공(1개): 코타키나발루
이스타항공(1개): 코타키나발루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外交使節을 交換... 韓國․馬來兩國間 合意”. 동아일보. 1960년 2월 24일. 석간1면. 韓國과 馬來聯邦은 二十三日 經濟 및 文化面에서의 緊密한 協調에 合意하는 한편 共産主義에 對한 兩國의 鞏固한 立場을 確認하였다. 韓國과 馬來兩國은 馬來政府官吏들과 韓國親善使節團(團長=金東祚氏)間에 있은 協商에 뒤이어 二十三日밤 聲明書를 發表하였다. 兩國은 또한 共同聲明書에서 外交使節을 交換할 것이라고 發表하였다. 
  2. “우리나라와의 관계”.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2011년 12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5월 15일에 확인함. 가. 기본일지... ㅇ 1962.5. 주말 우리 상주대사관 개설 ㅇ 1964.4.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 개설 
  3. “국가별 수출입”. 한국무역협회. 2011년 11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5월 15일에 확인함. 
  4. “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2012년 5월 26일에 원본 문서 (엑셀)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2월 25일에 확인함. 
  5. Kit G. Machado (1987년 6월). “Malaysian Cultural Relations with Japan and South Korea in the 1980s: Looking East”. 《Asian Survey》 (영어) 27 (6): 638. doi:10.1525/as.1987.27.6.01p00645. The prime minister, Datuk Seri Mahathir bin Mohamad, urges Malaysians to look to both Japan and South Korea "for inspiration, methods, and skills" and "to emulate and learn ... [their] work ethics and attitudes" in order to further the country's economic progress.1 ... 1. Address at the 5th ASEAN-Japan Symposium in Kuala Lumpur, August 24, 1982, in Foreign Affairs Malaysia (hereinafter FAM), 15:3 (September 1982), p. 228. 
  6. 외교통상부. 〈부록〉. 《한국 외교 60년》 (PDF). 488쪽. 2016년 3월 3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2월 21일에 확인함. 
  7. “崔泓熙씨任命”. 동아일보. 1962년 5월 1일. 석간1면. 政府는 外務部待機大使로 있던 崔泓熙씨를 30日字로 「말라야」聯邦駐箚特命全權大使로 任命했으며 
  8. “12國大使任命의결”. 동아일보. 1967년 9월 16일. 國務會議는 16일 駐美·駐英·駐日·駐獨大使를 포함해서 12개國駐在大使를 새로 任命키로 議決했다. 이날 議決된 大使級의 大幅移動은 朴大統領의 決裁가 나는대로 月內에 發令케 되었다. … ▲駐「말레이시아」 大使〓葛弘其(65·公報處長)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9. “朴大統領, 말聯國王과 歡談”. 경향신문. 1966년 2월 8일. 이에 앞서 7日下午「이스마일․나시루딘․샤」國王과 王妃, 「라만」首相 등 「말레이지아」정부要人과 교포들의 뜨거운 환영속에 「콸러룸푸르」에 도착... 
  10. “金外務 말聯에 도착...오늘 라자크와 會談”. 동아일보. 1975년 3월 4일. 金東祚外務長官이 4일간의 「말레이지아」방문을 위해 3일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19일간에 걸쳐 「아시아」각국을 순방중인 金長官은 도착후 기자들에게 자기는 4일 「압둘 라자크」「말레이지아」首相 및 「아마드 리라우덴」公報相 겸 外相과 공동관심사를 토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11. “貿易强化에 합의...韓․말聯 공동성명”. 경향신문. 1976년 3월 19일. 朴東鎭외무부장관과 리타우딘 말레이시아외상은 19일 공동성명을 발표, 평화․자유․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제국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양국간의 경제무역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朴장관은 지난 17일부터 3일간 말레이시아를 공식 방문한 후 발표한 이 성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