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마운트배튼오브버마 백작 루이 마운트배튼

영국의 정치가, 해군 장교, 식민지 관리자 그리고 영국 왕실의 가까운 친척
(루이스 마운트배튼에서 넘어옴)

제1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루이 프랜시스 앨버트 빅터 니콜라스 마운트배튼(영어: Louis Francis Albert Victor Nicholas Mountbatten, 1st Earl Mountbatten of Burma, KG, GCB, OM, GCVO, FRS, 1900년 6월 25일 ~ 1979년 8월 27일)은 영국정치가, 해군 장교, 식민지 관리자 그리고 영국 왕실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루이 마운트배튼
제1해군경
임기 1955년 4월 18일 ~ 1959년 10월 19일
전임 로데릭 맥그리고르
후임 찰스 람베
군주 조지 6세
총리 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제44대 인도 총독
임기 1947년 8월 15일 ~ 1948년 6월 21일
전임 아치볼드 웨이벌
후임 자신

제1대 인도 자치령 총독
임기 1947년 2월 12일 ~ 1947년 8월 15일
전임 신설[1]
후임 샤크라바티 라자고마라차리
무함마드 알리 진나

이름
본명 루이스 프랜시스 앨버트 빅터 니콜라스 마운트배튼
별명 디키
신상정보
출생일 1900년 6월 25일
출생지 영국 영국 버크셔주 윈저
사망일 1979년 8월 27일
사망지 아일랜드 아일랜드 슬라이고주 물라그모어
국적 영국 영국
배우자 에드위나 애슐리
자녀 제2대 마운트배튼오브버마 여백작 패트리샤 내치불
레이디 파멜라 힉스
종교 성공회
군사 경력
복무 영국 영국
복무기간 1913~1965
소속군 영국 해군
최종계급 함대 제독
지휘 지중해 함대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생애 편집

초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 루이헤센 공녀 빅토리아의 자녀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그리스 왕자비 앨리스, 스웨덴 왕비 루이즈, 제2대 밀퍼드헤이븐 후작 조지가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에든버러 공작 필립은 루이스의 조카이다. 어린 시절에는 버킹엄 궁전에서 살았고 조지 5세의 아들들이자 6촌 형들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랑 어울리고 다녔다.

루이스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군인이 되었으며 해군 제독(최종계급 원수)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인도의 마지막 총독을 지냈는데 그가 부임할 당시 인도는 독립을 앞두고 힌두교이슬람교가 대립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이슬람 연맹에 반대하고 힌두교 신자들의 국민 회의를 지지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과정에서 인도에 유리하게 국경을 그리도록 국경 위원 시릴 래드클리프에게 압력을 행사했다.[2]

1979년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던 루이스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가 요트에 설치한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요트에 타고 있는 인원은 루이스 본인, 장녀인 패트리샤, 패트리샤의 남편으로 루이의 사위인 존 내치불, 존의 어머니로 패트리샤의 시어머니인 도린 내치불, 쌍둥이 외손자 둘, 배의 선원인 14세 소년 모두 7명이었다. 테러로 사망한 인원은 루이 본인, 외손자 중 한명인 니콜라스 내치불, 패트리샤의 시어머니인 도린, 선원이었고 나머지 인원은 상해를 입고 생존했지만 이 생존자들도 거동이 불편해지고 흉터 등의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이 사건의 실행범인 토머스 맥만은 당시 31세로 종신형에 처해졌고 후일 벨파스트 협정으로 출소했다고 한다. 당시 폭탄은 엔진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각주 편집

  1. 정확히는 1947년부터 인도 부왕이라는 명칭은 삭제되고 독립된 인도 자치령의 초대 총독이었다.
  2. 닐 퍼거슨, 《제국》, 김종원 역, 민음사, 2006, p.462

외부 링크 편집


전임
루스투 에르델훈
제12대 NATO 군사위원회 위원장
 
1960년 ~ 1961년
후임
리먼 렘니처
전임
창설
영국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영국버마의 마운트배튼 자작
1947년 ~ 1979년
후임
패트리샤 내치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