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래(李學來, 1938년 12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체육인으로 전직 유도 선수와 유도 심판이었고 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대한체육회 고문, 민족통일체육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생애 편집

경기도 양주군 출생으로 1961년 한양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유도 선수가 되어 1964년 하계 올림픽에 유도 선수로 참가하였고,[1] 그해 전국종합개인유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였다.[2] 이듬해인 1965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도 사범이 되었고,[3] 1967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냈고, 한국으로 돌아와 1972년 하계 올림픽에서 유도 코치를 맡았다.[4] 1975년 국제유도심판이 되었다.[5] 1976년 하계 올림픽부터는 올림픽 유도 심판으로도 활동하였다.[6]

1981년 한국체육학회 부회장, 1984년 한양대학교 체육대학 학장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986년 국무총리 표창과 1987년 대통령 표창을 차례로 받고 그 해 대한민국 체육상을 받았다.[7]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유도 심판으로 심판 대표 선서를 했고[8], 1990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선수단 남자 감독을 맡았다.[9] 남북한 체육 교류에도 참여하여 1989년 남북체육회담에 참가하였고,[10]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 고문으로 참여하였다.[11] 그 해 체육훈장 백마장을 받았다.[7]

1993년부터 대한체육회 이사를 맡았고,[7] 2002년부터 3년간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되었다.[12]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7][13]

저서 편집

  • 한국근대체육사연구 (1990)
  • 한국유도발달사 (1990)
  • 현대사회와 스포츠 (1998) ISBN 8985541358
  • 스포츠와 인간승리 (1998) ISBN 8985541307
  • 북한의 체육 (2004) ISBN 8953420466
  • 한국현대체육사 (2008) ISBN 9788970923888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올림피크」의 얼굴”. 경향신문. 1964년 8월 14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柔道에 巨驅新人”. 동아일보. 1964년 11월 30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國威를 빛내는 跆拳·柔道”. 동아일보. 1966년 5월 14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뮌헌으로 가는 얼굴들”. 경향신문. 1972년 7월 31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5. “崔仁度씨등 셋合格 國際柔道심판으로”. 경향신문. 1975년 1월 9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6. “韓國審判 큰평가”. 경향신문. 1976년 7월 29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7.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⑪ - 서울캠퍼스 체육대학 체육학과 이학래 교수 Archived 2003년 12월 19일 - 웨이백 머신 - 한양대학교
  8. 1988년 하계 올림픽 참조
  9. “北京 한국선수단 확정”. 동아일보. 1990년 7월 14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0. “90北京 아시안게임 단일팀 논의 내일 南北韓 체육회담”. 경향신문. 1989년 3월 8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1. “통일축구 선수단등 76명 내일 平壤으로”. 동아일보. 1990년 10월 8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2. 제34대 대한체육회(KOC) 임원[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대한체육회
  13. “시드니올림픽 선수단장에 이상철 한체대총장(종합)”. 연합뉴스. 2000년 5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