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체육관(奬忠體育館)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에 위치한 체육관이다. KOVO V-리그 배구단 GS칼텍스 서울 KIXX서울 우리카드 우리WON의 홈구장으로 사용 중이다.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 외부전경
원어 명칭Jangchung arena
이전 명칭육군체육관 (1955년)
위치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41
좌표북위 37° 33′ 29″ 동경 127° 0′ 24″ / 북위 37.55806° 동경 127.00667°  / 37.55806; 127.00667
건설 기간1959년 8월~1963년 2월 1일
2012년 5월 30일~2014년 12월 31일 (리모델링)
개장1963년 2월 1일
2015년 1월 17일 (리모델링 후 재개장)
확장1973년 5월 4일 (본부석 증설)
1988년 4월 4일 (보수(증축) 공사)
2001년 3월 31일 (구조,지붕 보수공사)
2014년 12월 31일 (리모델링)
소유서울특별시
운영서울특별시(1963년~2007년)
동원엔터프라이즈(2007년~2015년)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2015년~현재)
설계김정수
건설 비용1억 2,300만원(첫건설시)
32억612백만원 (리모델링)
규모지하2층, 지상3층
건축연면적: 11,399.2 제곱미터
수용 인원4,507석 (고정석 3,183석, 가변석 1,324석)
사용처서울 드림식스 (V-리그 남자부) (2009년~2013년)
GS칼텍스 서울 KIXX (V-리그 여자부) (2009년~현재)
서울 우리카드 위비/서울 우리카드 우리WON (V-리그 남자부) (2015년~현재)
Map

역사 편집

1955년 6월 육군체육관으로 지붕이 없이[1] 출발했다.[2] 1959년 8월부터 서울특별시가 운영을 맡았다. 이후 본격적인 경기장으로 개·보수했다. 이 건물은 당시 서울특별시의 예산[3]과 국고보조금을 바탕으로 하여 처음에 총자금 9,200만원이 투입되었으며[4][5], 건축가 김정수에 의해 설계되었고, 감리는 미국의 벡텔사, 그리고 당시 한국 기술 여건상 실현하기 어려웠던 직경 80m 철골 트러스돔(철골트러스 32개, 환상형 트러스 13개)의 구조설계와 건축설계 부분은 미국에서 귀국한 건축가 최종완이 맡아[6][7], 삼부토건이 건설한[8] 대한민국 최초의 실내 경기장이다.[9] 필리핀 엔지니어가 참여했다는 설이 나돌았지만, 거짓인 것으로 결론지어졌다.[10][11][12] 이에 대한 보충 의견으로 감리를 맡은 미국의 Bechtel Corporation 아시아 사무소가 당시 필리핀에 있었기 때문에 필리핀인들이 단순노무활동을 하는 등의 보조적 양식으로 일부 건설에 참여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1963년 2월 1일에 개장했고 서울특별시에서 관리하다가 2007년 2월 1일부터 동원엔터프라이즈에 위탁했고,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동원과의 계약이 만료됐다.

배구, 농구, 종합격투기 등의 스포츠 경기와 콘서트, 마당놀이 등의 문화 공연이 열린다. 2009~2010 V-리그부터 프로 배구 구단인 GS칼텍스 서울 KIXX (여자부)와 서울 우리캐피탈 드림식스 (남자부)의 홈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리모델링 후 GS칼텍스는 2014-15시즌 후반기에, 그동안 모기업이 바뀐 서울 우리카드 위비는 2015-16시즌부터 다시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89년(13회)과 1992년(16회)에는 장충체육관에서 MBC 대학가요제가 개최되었다.

2012~2013 V-리그 종료 이후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2013년에 재개관할 예정이었지만 2014년 8월로 연기된 후, 지붕 보강 및 문화시설 사용까지 추진되면서 또 다시 완공이 연기되었지만 2015년 1월 17일 재개관하였고, 리모델링과 함께 근처의 동대입구역 연결 통로가 개설되었다.

연혁 및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주요 이벤트 편집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육군체육관개관식”. 국가기록원. 1955. 
  2. [1], 중앙일보 2014년 11월 29일, 김일 박치기는 떠났지만...장충체육관은 돌아왔다
  3. 제2대, 제47회, 제6차 서울특별시의회 본회의록 참조
  4. “奬忠體育館開館(장충체육관개관)을 祝賀(축하)한다”. 동아일보. 1963년 2월 1일. 2면. 
  5. 예상된 자금 9,200만원에서 공사중 자잘한 설비추가와 부분적으로 시행된 보수로 인한, 예상보다 증가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당시 정부와 서울시에서 추가적으로 투입한 자금으로 인하여, 당시 서울시가 투자한 총금액은 5억 6,000여만환(5,600만원)이며, 나머지는 정부의 국고보조금으로서, 총합 1억 2,300만원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외에 완공 이후에도 몇몇 문제점으로 인해, 1963년 완공 당해와, 1964년에 추가적으로 서울시의 예산을 투입하여 보수공사를 했던 일화가 있다.
  6. 이윤석, 정인하 (2003년 10월 24일-2003년 10월 25일). “1950-60년대 한국건축의 기술적 담론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23 (2): Pg 659. 
  7. 이윤석 (2004년 8월). “1950-60년대 한국건축의 기술적 담론에 관한 연구 : 종합건축과 신건축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 학위논문(석사)》. 
  8. “産業人脈(산업인맥) (14) 建設業(건설업) <3> 動亂期(동란기)”. 매일경제. 1973년 2월 15일. 5면. 
  9. “장충체육관, 우리 자금과 손으로 만든 `100% 국산`”. 디지털타임스. 2013년 5월 20일. 
  10. 장충체육관 건설과 필리핀이 연관있다는(설계, 감리, 자금지원, 건설)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출처도 불분명한 주장이다.
  11. 장충체육관 설계 및 시공자에 대한 오해 규명의 글
  12. “<장충체육관 건축에 대한 오해, 정정보도-바로잡습니다->”. 조선일보, DB조선. 2005년 8월 19일. 종합 A2면. 
  13. “팻분 내한공연 12일 장충체육관”. 동아일보. 2015년 1월 6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