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趙忠, ? ~ 189년 9월 22일(음력 8월 25일 또는 그 직후))은 후한 말의 정치가로, 기주(冀州) 감릉국(甘陵國) 동무성현(東武城縣) 사람이다.[1] 성문교위(城門校尉) 조연(趙延)의 형이며,[2] 요서태수(遼西太守) 조포(趙苞)의 종형이다.[1]

생애 편집

십상시 중의 한 사람이다.

후한 영제 때 국정을 어지럽힌 간신 집단 십상시의 부수장으로 영제가 그를 어머니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 후한의 정치적 부패의 요인이었던 환관(宦官)들의 전횡을 비판한 원소에 대해 "저 아이가 끝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3]

십상시의 난(189년 9월 22일(음력 8월 25일) 때 취화루 아래에서 하진(何進)의 동생 하묘(何苗)에게 살해당했다.

가계 편집

 

각주 편집

  1.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권81 독행열전(獨行列傳)
  2. 범엽, 《후한서》 권58 우열전(虞傅蓋臧列傳)
  3. 삼국지》 〈권6〉袁紹 條(3세기)의 배송지 주석 중 “中常侍趙忠謂諸黃門曰:「袁本初坐作聲價,不應呼召而養死士,不知此兒欲何所為乎?」” ( 중상시(中常侍) 조충(趙忠)이 여러 황문(黃門)들에게 이르기를, “원본초(袁本初)는 앉아서 이름값을 올리고, 부름에 응하지 아니하니 죽음을 키우는 사내로구나. 이 아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는가?” 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