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시 딜라이트 존스 2세(영어: Quincy Delight Jones Jr., 1933년 3월 14일)는 미국의 녹음 프로듀서, 가수, 영화 프로듀서다. 별칭은 "Q".[1] 60년간 연예 사업에 종업하되 그래미상에 80회 후보 지명[2](기중 28회 수상,[2] 1991년 그래미 전설상 포함)된 기록을 세웠다.

퀸시 존스
Quincy Jones
기본 정보
본명퀸시 딜라이트 존스 2세
Quincy Delight Jones, Jr.
출생1933년 3월 14일(1933-03-14)(91세)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성별남성
직업음악 프로듀서, 작곡가, 지휘자, 사업가, 배우
장르리듬 앤 블루스, 펑크, 소울, 빅밴드, 스윙, 보사노바, 재즈, 힙합, 로큰롤
활동 시기1951년~현재
악기트럼펫, 프렌치 호른, 드럼, 보컬, 피아노, 신시사이저
학력버클리 음악 대학 학사, 명예 박사
레이블Warner Bros., Columbia, Mercury, Qwest, Epic, ABC, Interscope
관련 활동라이어널 햄프턴, 레이 찰스, 디지 길레스피, 세라 본, 알리야, 마이클 잭슨, 프랭크 시나트라, 디나 워싱턴, 나나 무스쿠리, 딘 마틴, 투팍 샤커, 패티 오스틴, 타미아,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윌 스미스, 트레이 송즈, 레슬리 고어, 니키 야노프스키
웹사이트www.quincyjones.com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성장, 버클리 음악 대학에 재학했다. 1950년대 즈음 재즈 편곡가, 작곡가로서 위선 두각을 드러냈지만, 이후 대중 음악, 영화 음악으로 분야를 변경한다. 1968년 작곡가 동무 밥 러셀과,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배닝》의 삽입곡 〈The Eyes of Love〉로써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제가에 후보 지명된다. 마침 존스는 1967년 영화 《인 콜드 블러드》로 아카데미상 최우수 주제가에 또 지명된지라, 같은 해에 2회 해당 시상식에서 후보 지명된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기도 했다. 1971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 음악 감독, 작곡가로 피임했다. 1983년에 버클리 음악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1995년, 아카데미상 진 허숄트 박애상을 탄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된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에서 두 번째로 숱한 오스카 후보 지명 기록(음향 설계가 윌리 D. 버튼과 기급)을 보유한 위인이다.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도 활약하여 앨범 《Off the Wall》 (1979), 《Thriller》 (1982), 《Bad》 (1987)에 참사했다. 에티오피아 대기 구휼를 도모하는, 1985년 자선 가요 〈We Are the World〉의 프로듀서, 작곡가를 맡은 것도 그다.[3]

2013년 루 애들러와 더불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4]타임》지 선정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음악가들 중에 꼽혔다.[1]

서훈 편집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가예술훈장을 수여받는 퀸시 존스

참고 편집

  1. “Quincy Jones”. 《Quincy Jones》. 2014년 9월 27일에 확인함. 
  2. Callaway, Sue (2007년 1월 28일). “Fortune test drives a Mercedes Maybach with Quincy Jones – February 5, 2007”. CNN. 2009년 7월 18일에 확인함. 
  3. “Quincy Jones social activism”. 《Biography.com. 2016년 5월 19일에 확인함. 
  4. Busis, Hillary. “Public Enemy, Rush, Heart, Donna Summer to be inducted into Rock and Roll Hall of Fame | The Music Mix | EW.com”. Music-mix.ew.com. 2014년 5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2월 1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