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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가라유키상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우표와 사이공의 도장이 찍혀있다

가라유키상(일본어: 唐行きさん)은 19세기 후반에 해외에서 원정 성매매를 하던 일본인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규슈나가사키구마모토 지역출신이 많았으며 제겐이라는 중개알선업자의 손을 거쳤다. 가라유키상이란 말의 가라(唐)는 외국이나 외국의 것을 뜻하며 문자적 의미는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란 뜻이다.

개요편집

제겐 또는 핀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알선업자들은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젊은 여성들을 물색하여 해외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부추겨서, 부모에게 돈을 건낸후에 다시 이들을 포주에게 넘기면서 차익을 챙겼다. 이렇게 얻은 수수료 차익을 모아 직접 해외에서 사창가 경영에 뛰어든 자도 있었다. 가라유키상들의 주된 목적지는 중국, 홍콩, 필리핀, 보르네오 섬, 타이, 인도네시아등이다. 주로 유럽 식민지였던 아시아 국가들로서 유럽이나 미국 군대 주둔에 따라 수요가 많았던 곳에 파견되었다. 더 멀리는 만주, 하와이, 북아메리카(캘리포니아 주), 아프리카(탄자니아 잔지바르)까지 퍼져나간 경우도 있다.

이런 일본인 여성들의 해외진출에 대해 당시 여론은 낭자군(娘子軍)이라는 이름으로 선전하였고, 메이지 말기에 절정을 이루었으나,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국세가 나날이 성장해가자, 가라유키상 여성들에 대한 관점도 "국가의 수치"로 바뀌어 비난여론이 높아졌다. 1920년 매춘금지령과 더불어 해외에 있는 일본인 사창가들도 없어지게 되었다. 가라유키상은 대부분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생계가 막막하거나 본국과의 연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현지에 남는 경우도 있었다.

패전이후 가라유키상은 전쟁전 일본의 치부로서 그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72년 야마자키 도모코가 산다칸 하치만 사창가라는 책을 내면서 일본사회에 알려졌고, 이후 가라유키상에 대한 여러 연구서적이나 르포등이 이어졌다. 오늘날 일본에 입국하여 성매매와 연관된 유흥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여성들은 쟈파유키상(ジャパゆきさん)이라고 한다.

가라유키상의 노동환경편집

가라유키상이었던 기타가와 사키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보르네오 섬에서는 업소여성이 수입은 50%를 차지하고, 자기몫의 50%중 빚변제가 25%, 나머지 돈으로 의복,생활용품등의 잡비를 벌기 위해서는 1달에 스무명 이상의 손님을 받아야 했다. 항구에 배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업소에 손님이 넘쳐 하룻밤에 30명의 손님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