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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후토청(일본어: 樺太庁 가라후토초[*])은 1907년 3월 15일에 가라후토청관제에 의해 가라후토 민정서(樺太民政署)가 개편된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섬의 행정 조직이었다. 청사는 당초 오토마리 정에 놓여 있었지만, 1908년 8월 13일도요하라 시로 이전했다. 1945년 8월의 소비에트 연방의 대일 선전포고에 의해서, 가라후토청 관내에는 소련군이 침공해, 같은 달 말까지 가라후토청 전역이 점령되었다. 행정관청으로서의 가라후토청은, 외무성으로의 이관을 거쳐, 1949년 6월 1일, 국가 행정 조직법의 시행에 의해서 폐지되었으며 가라후토청은 사할린주로 계승되었다.

Imperial Seal of Japan.svg
대일본제국
가라후토청
樺太庁

1907년1945년
국기
국기
문장
문장
국가 기미가요
Karafuto.svg
수도 도요하라 시
정치
공용어 일본어
정부 형태 입헌 군주제
천황 메이지 천황 (1907 ~ 1912)
다이쇼 천황 (1912 ~ 1926)
쇼와 천황 (1926 ~ 1945)
역사
 • 성립 1907년
지리
면적 36090.3 km2
인구
1941년 어림 406,557명
기타
통화 (1907년부터)
현재 국가 러시아의 기 러시아 사할린 주

목차

역사편집

강제 징용편집

가라후토 섬(사할린 섬)에는 현재 강제 징용된 한국인 노동자와 그들의 후손 3만여 명이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원래 1930년대 말기부터 1940년대 전쟁 말기까지 일본 제국에 의해 부족한 광산 노동을 하기 위해 강제 징용되었던 것이었다. 약 15만 명이 이 지역으로 끌려왔으며 생존자들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역대 가라후토청장관편집

지리편집

남쪽의 홋카이도와는 라페루즈 해협으로 떨어져 있었다. 북쪽은 북위 50도선에서 소비에트 연방과 접하고 있었으며, 서쪽은 동해, 동쪽은 오호츠크 해에 둘러싸여 있다.

산업편집

제1차 산업이 기반이며, 어업·임업·농업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제지업·탄광도 번성하여서 1930년대 말부터 노동력 확보를 위해 한국에서 강제로 한국인을 징용하였었고 세법을 우대하였으며 혼슈로부터의 이주를 추진했다.

지역편집

각종 시설편집

재판소편집

1939년 당시

  • 가라후토 지방재판소
  • 도요하라 구 재판소
  • 마오카 구 재판소
  • 시루토루 구 재판소

형무소편집

1941년 당시

  • 가라후토 형무소
    • 마오카 형무출장소

치안편집

1941년 당시

  • 가라후토청 경찰부
    • 도요하라 경찰서
    • 오치아이 경찰서
    • 모토도마리 경찰서
    • 시루토루 경찰서
    • 시쿠가시 경찰서
    • 오토마리 경찰서
    • 루타카 경찰서
    • 혼토 경찰서
    • 마오카 경찰서
    • 노다 경찰서
    • 도마리오루 경찰서
    • 에스토루 경찰서

세무편집

1939년 당시

세관편집

  • 하코다테 세관 오토마리 세관 지서
  • 하코다테 세관 마오카 세관 지서

감시서편집

「감시서」란, 일본·소련 국경의 북위 50도선의 밀무역을 감시하는 관청이다.

  • 나이로 감시서
  • 야스베쓰 감시서

병의원편집

1939년 당시

  • 가라후토청 도요하라의원
  • 가라후토청 오토마리의원
  • 가라후토청 마오카의원

학교편집

교통편집

항로편집

섬이기 때문에 홋카이도와의 물자・인간의 수송에는 배가 이용되었다. 항로는 다음과 같다.

철도편집

섬 내의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목재・석탄의 조속한 이동이 급무가 되어 다음과 같은 철도선이 깔렸다.

기업편집

방송편집

신문편집

1939년 당시

  • 가라후토 신문
  • 가라후토 일일 신문
  • 가라후토 마이니치 신문
  • 오키타 신보
  • 가라후토 시사 신문
  • 마오카 마이니치 신문
  • 가라후토 신보
  • 가라후토 일보
  • 에스토루 마이니치 신문
  • 가라후토 시스카 시보
  • 석간 가라후토

은행편집

출신 유명인편집

이주자, 거주자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