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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일(姜炳一, 1892년 6월 24일 ~ 1919년 3월 4일)은 3·1 운동평안남도 강서군의 만세 시위 군중에게 발포했다가 시위대에게 살해된 일제 강점기친일 헌병보조원으로, 원적지는 평안남도 강서군 장안면이다.

강병일
姜炳一
조선총독부 예하 평안남도 평양 헌병주재소
안주 헌병분대 헌병보조원
(前 朝鮮總督府 隸下 平安南道 平壤 憲兵駐在所
安州 憲兵分隊 憲兵補助員)
임기 1916년 4월 1일 ~ 1919년 3월 4일
군주 요시히토 (일본 군주)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 주재 일본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 주재 일본 총독)
총리 오쿠마 시게노부 (일본 총리)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본 총리)
하라 다카시 (일본 총리)
신상정보
출생일 1892년 6월 24일
출생지 조선 평안도 강서군 장안면
사망일 1919년 3월 4일(1919-03-04) (26세)
사망지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본관 진주(晋州)
정당 무소속
서훈 1919년 9월 11일 욱일장 훈8등 백색동엽장 추서
군사 경력
군복무 일제 강점기 조선 주둔 일본군 헌병
복무기간 1916년 4월 1일 ~ 1919년 3월 4일
최종계급 일본군 헌병보조원
참전 3·1 운동 무력 진압

생애편집

1916년 4월 1일 헌병보조원이 되면서 평양헌병대 안주헌병분대에 편입되었다. 1919년 3월 4일, 3·1 운동 당시 평안남도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에서 시위 군중이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 사천시장 방면으로 행진을 벌이던 도중, 사천헌병주재소의 일본인 소장 사토 지쓰고로(일본어: 佐藤實五郞)와 조선인 헌병보조원 강병일, 김성규, 박요섭 등이 총격에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강병일은 사토, 김성규, 박요섭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다.

그해 9월 11일 일본 정부는 이날 살해당한 헌병보조원들에게 욱일장 8등, 훈8등 백색동엽장의 서훈을 내려 공적을 기렸고,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켜 그를 척살하는 데 가담한 조진탁을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는 등 이들을 강력히 처벌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도 선정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6년 12월). 〈강병일〉 (PDF). 《2006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서울. 548~551쪽. 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