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신씨

한국의 성씨

거창 신씨(居昌 慎氏)는 경상남도 거창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거창 신씨(居昌 慎氏)
관향경상남도 거창군
시조신수(慎修)
집성촌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대정리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
경기도 파주시 금촌읍 금릉리
주요 인물신안지, 신집평, 신승선, 신수근, 신수영, 숙의 신씨, 폐비 신씨, 단경왕후, 신후담, 신양재, 신용욱, 신중목, 신용남, 신극범, 신용하, 신구범, 신달자, 신성범, 신효범, 신수진
인구(2015년)51,153명
비고거창신씨 대종회

역사편집

시조(始祖) 신수(愼修)는 송나라 개봉부(開封府) 출신 진사(進士)로서 고려에 귀화하여 1075년(문종 29) 시어사(侍御史)가 되었고, 숙종 때 수사공(守司空) 우복야(右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으며, 1101년 사망하자 공헌(恭獻)의 시호를 받았다.[1] 신수의 아들 신안지(愼安之)는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였다.[2]

7세손 신집평(愼執平)이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1258년(고종 45)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서 몽골에 항전하였다. 무리한 청야전술에 대해 반감을 품은 조휘탁청의 반란으로 사망한다. 이들 반란군은 몽골에 투항하면 철령 이북의 땅을 몽골에 바치고, 이지역은 쌍성총관부로 선포된다. (쌍성총관부는 조선을 개국하는 이성계 일가의 토대가 되며, 조휘의 후손들은 조선 개국 충신이 됨.)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5명을 배출하였다. 15세손 신승선(愼丞善)은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사위이자 연산군 정비 폐비 신씨의 아버지로서 영의정에 오르고 거창부원군(居昌府院君)에 봉군되었다. 신승선의 아들인 신수근(愼守勤)의 딸도 중종비 단경왕후(端敬王后)가 되어 신수근좌의정에 오르고 익창부원군(益昌府院君)에 봉해졌다. 17세손 신희복(愼希復)이 명종 때 우참찬에 오르고, 18세손 신거관(愼居寬)은 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영조 때 신이의(愼爾儀)가 세자시강원시직(世子侍講院侍直)에 제수되었으며, 신후담(愼後聃)은 실학자로서 《서학변(西學辨)》을 저술했다.

정조영조 시절 이인좌의 난 (무신란 혹은 영남란)을 함께 일으킨 정희량(鄭希亮)의 거창 관야 찬탈에 맞서 싸우다 죽은 당시 향리였던 다섯명의 충신(신극종(愼克終), 신석현(愼錫顯), 신덕현(愼德顯), 신치근(愼致勤), 신광세(愼光世))을 기리는 사당인 거창 창충사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이 무신란으로 인해서 영남지역은 조선 말기까지 약 180년동안 사실상 암흑기로 돌입함.)

분파편집

13세 신이충(愼以衷)의 아들 3형제인 14세손에서 크게 3파로 갈라지고, 15세손에서 10종파로 나뉜다.

  • 14세 신기(愼幾) → 참판공파(參判公派)
    • 15세 신선갑 → 감사공파(監司公派)
    • 15세 신후갑 → 참의공파(參議公派)
    • 15세 신선경 → 동추공파(同樞公派)
    • 15세 신후경 → 통례공파(統禮公派)
  • 14세 신언(愼言) → 서령공파(署令公派)
    • 15세 신맹종 → 곽산공파(郭山公派)
    • 15세 신중종 → 거헌공파(居軒公派)
    • 15세 신성종 → 현령공파(縣令公派)
  • 14세 신전(愼詮) → 양간공파(襄簡公派)
    • 15세 신승명 → 참판공파(參判公派)
    • 15세 신승복 →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
    • 15세 신승선 → 장성공파(章成公派)

인물편집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편집

항렬자편집

26세 27세 28세 29세 30세 31세 32세 33세 34세 35세 36세 37세 38세 39세 40세 41세 42세 43세 44세 45세 46세 47세 48세 49세
필(必) 口구(九) 병(炳) 종(宗) 口성(珹) 口범(範) 용(鏞) 口재(縡) 중(重) 口규(揆) 口택(澤) 상(相) 口환(煥) 기(基) 口호(鎬) 영(泳) 口근(根) 연(然) 口규(圭) 현(鉉) 口원(源) 동(東) 口영(榮) 재(載)

인구편집

  • 2000년 43,890명
  • 2015년 51,153명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