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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방(擊棒)격구(擊毬)의 일종으로 장구(杖毬)와 더불어 성행한 조선 시대 공놀이다. 격방은 편을 갈라 골문을 만들고 나무 막대기로 공을 쳐 구멍에 넣는다는 점에서 오늘날 골프 또는 게이트볼과 흡사하다. 격구의 일종으로써 종종 격구나 타구(打球) 또는 봉희(棒戲) 따위로 기록되었으나 격구와 달리 장시(杖匙)가 아닌 막대기를 사용하며, 구문(毬門)이 아닌 구멍에 공을 넣는다는 것이 다르다.

경기 방법편집

경기 방법은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기록[1][2][3]으로 알 수 있다

선수와 장비편집

  • 열 명 또는 수십 명이 좌우로 나누어 승부를 겨루게 된다.
  • [毬] - 크기는 달걀만 하며, 마노(碼碯)나 나무로 만들어졌다.
  • 막대기[棒] - 소 가죽으로 만들어진 숟가락 모양 막대기는 크기가 손바닥만 하고, 자루는 두터운 대나무를 소재로 하여 만들어졌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분[棒皮]이 얇으면 공이 구르고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 두꺼움과 크기에 따라 명칭이 각각 달랐다.

와아편집

  • 와아(窩兒)는 공이 들어가게 되는 구멍이다. 땅을 파서 주발[椀] 모양으로 만들어지며 평지에 주로 만들어졌지만 섬돌 위에도 만들어졌다. 와(窩)는 여러 가지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그에 따라 공의 움직임이 달라지기도 한다. (와는 때때로 전각(殿閣)과 전각 사이에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타구와 규칙편집

타구편집

  • 여러 공을 치게 되는데 치는 방법에는 여러 자세로 쳤다. 서서 치거나 무릎꿇고 앉아서 치는 따위의 자세가 행해졌으며, 공은 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위치로 움직여 나간다.

규칙편집

  1. 공이 구멍에 들어가면 점수를 내게 되며 다양한 점수제가 사용되었는데, 산가지를 이용하여 점수를 표시하였다.
  2. 점수는 한 번에 공을 쳐 와에 들어가면 2점, 공이 멈춘 자리로부터 두세 번 쳐서 들어가면 1점을 얻게 된다.
  3. 한 번 쳐서 들어가면 다른 공은 두 번 치지 못한다. (비례하여 늘어남.)
  4. 두 번째 치는 공부터는 다른 공과 부딪히면 죽는다.

그 밖에[출처 필요]편집

  • 와아(窩兒)에 공이 들어가면 다음 와아로 이동, 20점으로 경기종료. (총 점수로써 와아는 대략 10개로 정도로 추정.)
  • 첫 공은 기(基)라고 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며, 여기에서 60보(약45m)~100보(약75m) 정도 거리의 와아를 목표로 함.

※출처가 없어 확실치 않으나 기록은 해둠.

역사 속 격방편집

  • 조선에서는 경신일(庚申日)에 밤을 세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도교적 믿음에 따라 경신일 날 삼시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이를 위하여 세종과 같은 임금은 밤세 격구를 하며 날을 세었다.[4]
  • 16세기 이후로 격방의 기록은 사라진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태종실록 13년, 2월 30일
  2. 세종실록 3년, 11월 25일
  3. 세조실록 1년, 9월 8일
  4. 성종실록 10년, 12월 6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