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옹주(慶順翁主, 1482년 ~ ?)는 조선옹주이다. 성종의 5녀이자 서4녀이며, 어머니는 숙용 심씨이다.

경순옹주
慶順翁主
조선 성종의 옹주
이름
옥환(玉環)
신상정보
출생일 1482년
사망일 미상 (1546년 이전)
부친 성종
모친 숙용 심씨
배우자 의성위(宜城尉) 남치원(南致元)
자녀 1남 1녀
남기 · 이항의 처 남씨

생애 편집

1482년(성종 13년) 성종숙용 심씨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옥환(玉環)이다.

거창부원군 신승선의 외손자이자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의 조카 의성위(宜城尉) 남치원(南致元)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얻었다.

남편인 의성위 남치원은 풍류와 음주가무를 즐겼으며, 임숭재와 더불어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다. 이후 중종 대에 다방면으로 물의를 일으켰으며 헌부에서 방출한 궁녀를 첩으로 들여[1] 헌부가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청하자 작록을 빼앗기고 가까운 도에 부처되었다.[2] 대신들이 남치원을 더욱 강하게 처벌할 것을 청했으나 중종은 이를 묵과하였다.

경순옹주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들 남기(南沂)가 1546년(명종 1년), 정흥종의 옥사에 연루되어 참형에 처해졌는데[3], 당시 남기가 경순옹주의 제사를 지내왔다는 기록으로 보아 1546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4]

남기가 참형에 처해지면서 경순옹주의 제사는 다른 이에게 맡겨졌으며, 남기와 그 자손들은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서 삭제되었다.[5]

가족 관계 편집

각주 편집

  1. 중종실록》 27권, 중종 11년(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12월 22일 (무진)
    헌부에서 방출한 궁녀를 첩으로 삼은 의성위 남치원을 벌주도록 아뢰다
  2. 중종실록》 27권, 중종 11년(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12월 26일 (임신)
    정광필 등이 남치원의 범죄를 금부에 내려 추국하도록 아뢰니, 윤허하다
  3. 명종실록》 4권, 명종 1년(1546년 명 가정(嘉靖) 25년) 8월 13일 (정유)
    정흥종과 남기를 당현에서 참하고 가산을 몰수하다
  4. 명종실록》 4권, 명종 1년(1546년 명 가정(嘉靖) 25년) 8월 14일 (무술)
    남기가 행하던 경순 옹주에 대한 봉사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하도록 명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남기는 경순옹주(慶順翁主)를 【성종대왕의 딸이며 남기의 어머니이다】 봉사(奉祀)하던 자이니, 봉사하는 집과 봉사에 관계되는 물건을 일체 관부(官府)에 귀속시키지 말라.

    이는 다른 사람이 봉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명종실록》 4권, 명종 1년(1546년 명 가정(嘉靖) 25년) 9월 10일 (갑자)
    종부시 제조가 이유 및 남기의 자손을 《선원록》에서 삭제할 것을 청하다
    종부시 제조(宗簿寺提調) 이성군(利城君) 이관(李慣) 등이 아뢰기를,

    "죄인 이유(李瑠, 계림군) 및 남기(南沂)의 자손을 《선원록(璿源錄)》에서 삭제하소서."

    하니, 그리하라고 답하였다.

  6. 태종의 6대손
    태종근녕군 → 옥산군 이제 → 영인군 이순 → 영천수 이심 → 이씨 부인
  7. 최명길의 진외조부
  8. 세종의 12남 밀성군의 증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