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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약조(癸亥約條)은 1443년(세종 25년) 이예(李藝),변효문(卞孝文) 등이 대마도주(對馬島主)인 소 사다모리(일본어: 宗貞盛 종정성[*])와 맺은 조약이다. 대마도조선 간의 세견선(歲遣船)[1]에 관한 조약이다.[2]

개설편집

3포의 개항 이후 3포에는 수많은 왜인이 거주하게 되고, 그들을 통한 미곡·면포(綿布) 등의 수출이 거액에 달하여 끼치는 해가 컸다. 이에 계해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에 의해 대마도주는 연(年) 50척의 세견선(조선에서 내왕을 허락한 무역선)을 파견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도 조선에서 도주(島主)에게 내린 도서(圖書)가 찍힌 증명서가 있어야만 입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 조선에서 내주는 세사미두(歲賜米豆)[3]은 200석으로 제한하였다. 조선은 교린 정책 및 해방 정책(海防政策)의 일환으로서 부산포, 제포, 염포의 세 곳을 개항하여 통상을 허가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 및 출처편집

  1. “세견선”. 표준국어대사전. 2011년 2월 1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5월 27일에 확인함. 조선 세종 때에, 대마도주의 청원을 들어주어 삼포(三浦)를 개항한 뒤 내왕을 허락한 무역선 
  2. (위키실록사전-계해약조는 1443년 대마도체찰사 이예(李藝)가 대마도로 가서 대마도주 소 종정성(宗貞盛)과 세견선 등의 액수를 정한 약조로 일본에서는 가길조약(嘉吉條約)이라고 하였다.)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A%B3%84%ED%95%B4%EC%95%BD%EC%A1%B0(%E7%99%B8%E4%BA%A5%E7%B4%84%E6%A2%9D[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Ibid., "조선 세종 때부터 해마다 대마도주에게 내려 주던 쌀과 콩"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조선초의 대외관계"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