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 (고구려 장군)

고현(高玄, 642년 ~ 690년)은 삼국 시대당나라의 장수이다. 고구려 출신으로서 연남생을 따라 당나라에 투항하였다. 고구려-당 전쟁당나라에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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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高玄)
출생지 고구려 국내성 (추정)
사망지 당나라 낙양
복무 고구려
지휘 고구려군
주요 참전 고구려-당 전쟁

당나라에 투항과 고구려 침공 참전편집

642년 보장왕(寶臧王) 원년에 출생하였고, 자(字)는 귀주(貴主)이다. 증조(曾祖)인 고보(高寶)는 고구려에서 도독(都督)을 역임하였고, 할아버지 고방(高方)은 고구려에서 평양성(平壤城) 자사(刺史)를 역임하였으며 부친 고렴(高廉)은 당나라에서 천주(泉州) 사마(司馬)로 추증되었던 대대로 고구려의 왕실의 귀족가문 출신이다.

667년 보장왕(寶臧王)26년, 25세 때, 연남생을 따라 당나라에 투항하여 당나라 장안성(長安城) 안에 살게 되었다.(연남생의 묘지명에 따르면, 건봉(乾封) 원년(666)에 아들 천헌성(泉獻誠)을 당에 입조(入朝)시켰고, 자신은 이듬해에 당나라로 들어갔다가 총장(總章) 원년(668)에 돌아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다시 당나라로 개선하였다. 그런데 고현(高玄)이 고구려 멸망시 당나라 군대에서 활동하였으므로 667년에 당나라로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668년 보장왕(寶臧王)27년, 26세 때 연남생을 따라 당나라군대에 합류하여 선봉장으로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이 때의 공적으로 의성부(宜城府) 좌과의도위(左果毅都尉) 총관(摠管)에 제수되었다.

이후의 생애편집

683년 당(唐) 홍도(弘道)원년에 관등이 한 계단 올라서 운휘장군(雲麾將軍)이 되었고 686년 수공(垂拱)2년 2월, 신무군(神武軍) 통령(統領)으로 파견되었고, 687년 수공(垂拱)3년 4월, 돌궐(突厥)을 격파하여 우옥검위(右玉鈐衛) 중랑장(中郞將)으로 제수되었다. 689년 영창(永昌) 원년, 칙명을 받아서 여러 주(州)에서 고구려(高句麗) 병사(兵士)를 선발하였고 이 해 7월, 다시 칙명을 받아서 낙주(洛州)의 병사(兵士)를 선발하여 곧 신평도(新平道) 좌삼군(左三軍) 총관(摠管)에 임명되어 돌궐(突厥) 정벌에 나섰다. 690년 천수(天授)원년,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행좌표도위(行左豹韜衛) 익부(翊府) 중랑장(中郞將)에 제수되었으며 . 10월 26일, 49세를 일기로 낙양(洛陽) 합궁현(合宮縣)의 자택에서 병사(病死)하였다. 691년 천수(天授)2년 2월, 묘지명이 작성되었고 이 해 10월 18일, 낙양(洛陽) 북망산(北邙山)에 장례를 지냈다.

연남생을 따라 투항한 고구려 귀족가문 출신으로 연남생의 근거지였던 국내성 출신으로 추정되며 그의 묘비명에는 솥을 들어 멜 정도로 굳센 재질을 지녔고, 산을 뽑을 만큼 장한 기운을 품었다고 나와있고 그의 용맹을 높이 사 고구려 정벌에 나서도록 칙명을 내렸다라고 나와있다. 또한 그의 지혜와 용기를 높이 사서 당나라에서도 여러차례 높은 지위에 올라 출정하였으며 변방에서도 그를 몹시 두려워하였다 하니 용력과 용맹이 매우 뛰어난 장수였다고 추측된다.

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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