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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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양군(昆陽郡)은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서부 곤명면, 곤양면, 서포면 세 면과 하동군 남부 해안의 진교면, 금성면, 금남면 지역에 있던 지역이다.

유래 편집

고대에 처음 기록상의 이름은 곤미(昆彌)였다. 철성(鐵城)·곤산(昆山)이라고도 한다.

역사 편집

  • 삼한시대에 군미국(軍彌國)으로 알려졌다.[1]
  • 가야연맹에 속했고 포상팔국에 가맹해 금관가야에 대항하기도 했다.
  • 삼국시대에 포촌현(浦村縣), 신라시대 하읍현(河邑縣)에 속했다. 하읍현의 치소는 지금의 하동군 진교면으로 추정된다.

금성, 금남면에는 성량현(省良縣)이 있었다.[2]. 하읍현과 성량현은 하동군의 영현이었다.

1914년 이후 편집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곤양군 가리면(加利面) 탑동/가화동 일부/(진주군 축곡면)수거동 일부, 검정동 일부, 제방동/묵곡동 일부/환덕동 일부, 검정동 일부/중항동, 환덕동 일부/본촌동, 갑사동/흥곡동/묵곡동 일부 사천군 곤양면 가화리, 검정리, 묵곡리, 중항리, 환덕리, 흥사리
곤양군 동부면(東部面) 남문외동, 대진동, 동정동/서정동/사동 일부/(서부면)방천동 일부/맥사동 일부, 성내동, 포곡동/가전동/송정동 남문외리, 대진리, 서정리, 성내리, 송전리
곤양군 서부면(西部面) 금진동 일부, 금진동 일부/내구동, 원동/평촌동, 맥사동 일부, 외구동/방천동 일부/(양포면)오도동 일부/(동부면)사동 일부 사천군 서포면 금진리, 내구리, 무고리, 맥사리, 외구리
곤양군 양포면(兩浦面) 구소동 일부/두리동, 독소동/다맥동/구소동 일부, 비토동, 염전동/선창동, 자혜동, 조도동 일부/구랑동 일부 구평리, 다평리, 비토리, 선전리, 자혜리, 구랑리,조도리
곤양군 곤명면(昆明面) 금성동 일부, 본촌동 일부, 조평동 일부/(진주군 축곡면)연향동 일부, 정곡동/금성동 일부/(성방면)신흥동 일부 사천군 곤명면 금성리, 본촌리, 연평리, 정곡리
곤양군 성방면(城方面) 본촌동/우교동 일부, 신흥동 일부, 작팔동/우교동 일부 성방리, 신흥리, 작팔리
곤양군 초량면(草梁面) 봉계동/오천동, 용동, 조양리/평촌동, 손량동/삼거리동 일부, 추동 봉계리, 용산리, 조장리, 초량리, 추천리
곤양군 소곡면(所谷面) 마곡동, 삼정동, 송림동/(성방면)우교동 일부, 조동/은사동 마곡리, 삼정리, 송림리, 은사리
곤양군 금양면(金陽面) 삼천동/덕포동, 영천동/계항동, 대동동, 진목동/금오동, 대송동/곶치동, 소송동/수문동/미법동, 궁항동, 광포동/명덕동/가인동, 고포동/(하동군 마전면)사포동 하동군 금양면 노량리, 대치리, 중평리, 고룡리, 양포리, 안심리, 술상리
곤양군 서면(西面) 삼천동/덕포동, 영천동/계항동, 대동동, 진목동/금오동, 대송동/곶치동, 소송동/수문동/미법동, 궁항동, 광포동/명덕동/가인동, 고포동/(하동군 마전면)사포동 하동군 남면 덕천리, 계천리, 대도리, 진정리, 대송리, 송문리, 궁항리, 가덕리, 고포리

주요인물 편집

  • 정기룡-1562년 곤양현(昆陽縣) 중평(仲坪)(지금의 하동군 금남면(金南面) 중평리(仲坪里))출생, 1622년 삼군통제사로서 통영의 진중에서 순직.

성씨 편집

특이사항 편집

중국에도 곤양(昆陽)이라는 지명이 몇번 나오는데 후한시대에 후한 광무제왕망사이의 곤양전투가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예현(葉縣)인 곤양성(昆陽城)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지금의 중국 곤양은 윈난성 쿤밍 시 진닝 현(晉寧縣)의 쿤양진(昆陽鎭)인데 정화(鄭和)(1371~1434년)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한편 쿤양진이 속한 쿤밍(昆明) 시조차 이름이 곤양의 옛 이름중에 하나인 곤명(昆明)과 같다. 단 이는 모두 우연의 결과이다.

각주 편집

  1. 군미국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진한으로 분류되었다.
  2.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7)삼국사기 4권 주석편(下)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