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서파

조선 광해군, 인조 때의 문신.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각종 문집자료에서는 보통 '김관옥(金冠玉)'으로 일컬어진다. 인조반정의 주모자. 이괄의 난에도 연관이 있다. 김자점 등극에도 기여했다. 조선 중기의 거물 정치인이자 공서파 서인의 대표격 인물. 쿠데타 이후 전형적인 보수파 엘리트로 활약하여, 킹메이커로서 능력을 발휘한 현실적인 정치가이다. 유명한 명신 이항복의 제자 중의 한명이기도 하다.

김류는 종종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라고 비판받지만, 이는 '청나라랑 전쟁하자!' '환향녀를 쳐죽이자!' 라던 말도 안되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던 청서파 서인들을 견제하고 신중론을 내세우던 말년에 다른 서인들한테 '선비도 아닌놈, 박쥐 같은 놈' 이라고 불리며 미움을 받아서 덧씌워진 악평에 가깝다. 실제로는, 왕인 광해군과 인조가 히스테리를 부려서 목숨이 위험한 시기에도 반대를 표시하여 미움받기를 자처했을 정도로, 의외로 깡이 있었다.

어쩄든 중년시절의 김류는 현실 권력적, 세력가 지향적인 행보로 인조반정, 이괄의 난, 김자점 등극이라는 트리플 크라운에 간접적으로 기여했고, 아랫사람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덕분에 진짜 역적들을 능가하는 더 심각한 백성들의 증오를 받았다. 물론, 당시의 백성들의 입장에선 미워할만 하다. 일련의 사건들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 서인들의 대표격인 인물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류는 음모를 꾸미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고, 청서파 서인들이나 선비들이 의(意)를 중시하면서 과격한 이상주의를 내세울 때, 과격한 논리에 맞서 현실주의를 추구했던 신중한 행정가 타입의 인물상에 가까웠다.[1] 실제로, 김류가 정치에 나설 때는 과격한 서인끼리의 삽질로 국력을 깎아먹는 상황에 대한 예방을 하려고 중재자로 활약한 경우가 태반이며, 오히려 서인들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다수의 사건에서는, 김류가 말빨이나 서인들의 쪽수에서 쳐발려서 반대를 표시했음에도 그의 의견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던 사건이 태반이다. 즉, 인조반정 4대장급 인물들의 간판 중의 하나였으니 까이는 것 자체는 당연하지만, 현실에서 김류의 행보는 대중의 편견과는 달리 상식적인 모습을 많이 남긴 편이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