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연호)

대한제국 고종의 연호 (1897년 8월 17일〜1907년 8월 2일)

광무(光武)는 1897년 8월 17일부터 1907년 8월 3일까지 대한제국 고종 때에 사용한, 대한제국의 첫 번째 연호이다.

광무(光武)
1897년 ~ 1907년
국가대한제국(大韓帝國)
군주대한제국 고종

대한제국 고종 시기에 위치한 광무
광무 (연호)에 대한 다국어 표기
한글 표기: 광무
한자 표기: 光武
로마자 표기: Gwangmu
중국어 표기: 光武
한어병음 표기: guāngwǔ (광우)
일본어 표기: 光武
가나 표기: こうぶ (고부)
こうむ (고무)
베트남어 표기: Quang Vũ (꽝부)

조선급진개화파(개화당) 세력은 을미사변(1895) 이후 갑오개혁(1894)때 만들어진 내정개혁안을 추진, 1895년 11월부터 양력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특히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하고, 연호를 "건양(建陽)"이라 하였다.

그 후 1897년에 의정부 의정대신 심순택의 주청을 받아들여 8월 14일에 "광무"라는 새로운 연호를 정하고, 8월 17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고종은 같은 해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이튿날(10월 13일) 정식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다.

외부로는 명나라 연호인 숭정기원과 영력 연호를 쓰던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건양 이후로 건양, 광무 등의 연호를 사문서에 기재하였다. 그러나 명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던 조선의 일부 성리학자들은 광무라는 연호를 쓰는 것을 거부하였다. 특히 강원도 춘천의 유중악(柳重岳)은 개화정책과 단발령을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광무 연호를 쓰기를 거부하였다.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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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양(建陽) 2년(1897년) 8월 17일에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나서 칭제 건원함에 따라 연호를 광무(光武)로 건원함.

연대 대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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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대조표
광무 서기
(西紀)
간지
(干支)
청나라 연호 일본 연호
원년 1897년 정유
(丁酉)
광서(光緖) 23년 메이지(明治) 30년
2년 1898년 무술
(戊戌)
광서 24년 메이지 31년
3년 1899년 기해
(己亥)
광서 25년 메이지 32년
4년 1900년 경자
(庚子)
광서 26년 메이지 33년
5년 1901년 신축
(辛丑)
광서 27년 메이지 34년
6년 1902년 임인
(壬寅)
광서 28년 메이지 35년
7년 1903년 계묘
(癸卯)
광서 29년 메이지 36년
8년 1904년 갑진
(甲辰)
광서 30년 메이지 37년
9년 1905년 을사
(乙巳)
광서 31년 메이지 38년
10년 1906년 병오
(丙午)
광서 32년 메이지 39년
광무 서기
(西紀)
간지
(干支)
청나라 연호 일본 연호
11년 1907년 정미
(丁未)
광서(光緖) 33년 메이지(明治) 40년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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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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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 융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