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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만 조차지

광저우만 조차지()는 1899년부터 1945년까지 프랑스가 중국 남부의 레이저우 반도 북동부에 조차하고 있던 지역으로, 현재는 광둥 성 잔장 시에 해당한다.

광저우만 조차지
18981946
국기
국기
문장
문장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합법적 영토
KouangTcheouWang.JPG
수도포트 바야르 잔장 시
정치
공용어프랑스어(공식)
광둥어
지리
1899년 어림 면적1,300 km2
인구
1911년 어림189,000명
기타
통화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피야스테르 (p)
현재 국가광둥 성 잔장 시

배경편집

1897년 프랑스 해군 바야르급 기갑함 "바야르"는 우연히 청나라 광둥 성레이저우 반도 동쪽 아래에 있는 바다로 들어갔는데 상당히 깊은 양항인 것에 놀랐고, 1899년 이 만 일대를 점령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관리 하에 두었다. 1899년 청나라프랑스 사이에 중불 상호 개정 <광저우만 조계 조약〉(廣州湾租界條約)이 정식으로 체결되어 프랑스가 99년간 조차를 결정했다. 조약은 1900년부터 발효되었고, 광저우만 조차지를 공식적으로 인도차이나 연방에 추가하였다.

변천편집

프랑스는 광저우 만의 중심부에 바야르 요새(Fort Bayard)를 쌓고 영국 홍콩에 상당하는 대 중국 무역 · 투자의 거점으로 삼았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에 의해 파리독일군에 함락되고, 프랑스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필리프 페탱 원수의 비시 정부로 분열되면서 중화민국은 자유 프랑스 망명 정부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기 때문에, 광저우만 조차지는 자유 프랑스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은 1943년 비시 정부 사이에 ‘광저우만 공동 방위 협의’를 체결하고, 이 지역을 점령하고 광저우만 조차지를 일본-프랑스 공동 관리 하에 두었다. 자유 프랑스 정부와 중화민국 정부는 이에 관여하지 않았고, 1945년 8월 일본군이 무조건 항복하자 프랑스 정부는 즉시 광저우만 조차지를 중화민국에 반환했고, 중국은 이 땅을 잔장 시로 개칭했다.

현재편집

광둥 성 잔장 시 시내에는 현재도 프랑스 조차지 시대의 서양식 건축이 남아 관광지가 되고 있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