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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광주안씨 씨족연원 (廣州安氏 氏族 淵源)

광주안씨 시조는 휘 방걸(邦傑)이며 고려 태조 때에 광주지방의 뛰어난 관리였다.

광주의 어떤 사람이 지방수령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하여 그 공적으로 대장군에 오르고

광주군에 봉하여져 광주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제보 려조시 광주인살주 공창의토평지 배대장군 봉광주군 인위관향

(諸譜 麗祖時 廣州人殺主 公倡義討平之 拜大將軍 封廣州君 因爲貫鄕)


...광주안씨 대종회에서 시조연원을 한글화 함....

주 소 (우)52035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선왕길527 (광주안씨 재각)

인물편집

  • 안 성(安省, 1344년 ∼ 1421년) :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보문각직학사(寶文閣直學士)를 거쳐 상주판관이 되었다.

조선 개국 후 최초 청백리이며 영백, 해백, 한성윤, 강원도 관찰사, 좌참찬, 개성유휴를 거쳐 평양백하다.

관찰사 부임시 태종의 친필을 받았고 그 판각본이 현재 남아있다. 시호는 사간(思簡)이다.

  • 안완경(安完慶, ? ~ 1453년) : 1423년(세종 5) 식년문과 급제, 집현전 직제학, 중시(重試)급제, 부제학, 대사헌을 거쳐 충청감사

재임시 계유정난후 수양대군에 의하여 순절하다. 단종의 충신으로 강원도 영월 정충단(貞忠壇)에 부식하다. 호는 정암(貞庵)이다.

  • 안팽명 (安彭命, 1447년~ 1492년) : 안성(安省)의 손자. 1476년 문과급제, 통정대부, 지재교, 대사간, 대사성겸 춘추관 편수관하다.

청백리(淸白吏)에 록(錄)함.

  • 안윤손(安潤孫, 1450년 ~ 1520년) : 1476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지제교 역임중 사가호당(賜暇浩堂=임금이 공부하도록 휴가를

줌)하다, 회령판관, 전라우도수군절도사, 황해감사, 대사헌을 역임하고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 안황(安滉, 1549년 ~ 1593년) : 1574년(선조 7) 문과에 합격하고, 1590년 사도시정(司䆃寺正), 1592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다가 1593년 의주로부터 환도하는 중도에 졸하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광양군(廣陽君)에 추봉되었으며, 뒤에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안정복(安鼎福, 1721년 ~ 1791년) : 역사학자, 실학자, 조선조 최고 역사서 동사강목 외 다수 저술 , 광주안씨 경술보(1790년)서두에

변무(辨誣=거짓을 밝힘)글로 안씨동원보(安氏同原譜=조선의 안씨들은 중국에서 온 이씨이다 라는 거짓 족보)에 후손들은 속지말라

라고 경계함. 광성군에 봉해짐. 잡동사니(雜同散異)라는 책명은 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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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편집

광주(廣州)는 경기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이다. 기원전 18년 백제 시조 온조왕이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라하고 도읍으로 삼았고,

371년 백제의 근초고왕은 이곳을 한성(漢城)이라 불렀고, 신라 경덕왕때 한주(漢州)로 개명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광주(廣州)로 이름을 고치고, 그 후 여러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조선 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광주군이 되었다.

광주안씨 대종회 소재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선왕동의 봉산재(逢山齋)이다.편집

광주안씨는 시조로부터 14세인 전중시어사 휘 유(綏)공이 경상남도 함안(咸安)으로 이거(移居=완전히 이사함)하였고,

이후 모든 광주안씨 후손들은 함안에서 전국으로 확산하였으며,경기도 광주의 갈마치(시조의 무덤이 있다는 산)아래

텃골(德谷)과 인근에도 세거지(世居地=집성촌)가 있으며, 매년 춘향제(春享祭)는 경남 함안군 선왕동의 봉산재에서 모신다.

인구편집

  • 2000년 43,609명
  • 2015년 48,033명

집성촌편집

 
시례광주안씨세거지 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