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구재학당(九齋學堂)은 고려 때 사학(私學)의 하나로서, 문헌공도(文憲公徒)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종 때의 명유(名儒) 최충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후진 양성을 위해 개설한 사숙(私塾)으로서, 당시 국학(國學)[1]은 시설 면으로나 교육 면으로 유명무실했으므로 많은 과거 응시자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9재학당은 악성(樂聖)·대중(大中)·성명(誠明)·경업(敬業)·호도(浩道)·솔성(率性)·진덕(進德)·대화(大和)·대빙(待聘) 등 아홉 개의 학반(學班)으로 나누었다. 학과는 5경과 3사를 중심으로 하고 시부사장(試賦詞章)의 학을 더하였다. 최충이 죽은 뒤 시호(諡號)에 따라 이 학당을 문헌공도라 했으며, 과거 응시자의 준비 기관이 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국자감(國子監)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한국사 > 중세사회의 발전 > 귀족사회와 무인정권 > 귀족문화 > 9재학당"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