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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 단다이(일본어: 九州探題)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무가정권(막부)이 규슈를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적 보조기관이다. 진제이 단다이.

무로마치 막부는 교토에 정권을 세웠기 때문에, 가마쿠라에 설치된 가마쿠라 구보간토를 통치하고, 오슈 단다이도호쿠 지방을 통치했다. 규슈 단다이는 규슈 통치를 담당했으며 조선과의 외교등도 함께 행했다.

규슈 단다이의 역사편집

고다이고 천황겐무 신정에서 이반한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교토 탈환을 시도하나 실패하고 멀리 규슈로 달아난다. 반격의 태세를 갖춘 아시카가측은 다타라하마 전투에서 쇼니 씨와 함께 천황측인 기쿠치 씨를 격파하고 동쪽으로 진군을 시작한다. 규슈를 떠나며 잇시키 노리우지다자이후에 남긴 것이 규슈 단다이의 시초이다.

하지만 규슈의 지방세력인 시마즈 씨오토모 씨 등은 이에 따르지 않고 쇼니 씨와 대립했다. 게다가 기쿠치 씨고다이고 천황의 아들인 가네나가 친왕을 맞이해 다자이후를 탈환하고 규슈에 남조 세력을 형성한다.

막부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의 시대인 1371년, 간레이호소카와 요리유키에 의해 이마가와 사다요가 규슈 단다이에 임명된다. 사다요는 남조 세력을 쓸어내고, 고케닌슈고 피관화(被官化)에 힘썼다. 또한 사다요조선에서 사자를 맞이해 왜구 토벌의 요청 등을 수락하는 등 막부의 일명무역(조공무역) 개시에도 일임했다.

1379년에 벌어진 고랴쿠 정변으로 인해 이마가와 사다요를 지원하던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실각하게 된다. 규슈에서 독자적 세력을 지니고 있던 사다요는 직위에서 해임되고, 후임으로 시부카와 미쓰요리가 취임한다. 이후는 계속해서 시부카와 씨가 직위를 잇는다.

센고쿠 시대에도 형식적인 막부 직위로서 존재해, 시부카와 씨의 멸망 후에는 오토모 소린이 여기에 임명된다.

규슈 단다이의 인물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