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영 측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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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 측우기(錦營 測雨器)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측우기이다. 대한민국에서 보물 제56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대한민국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다.

금영 측우기
(錦營 測雨器)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보물
종목보물 제561호
(1971년 12월 21일 지정)
시대조선
주소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16길 61
기상청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측우기로, 공주 감영에 보관되어 있다가 와다 유지에 의해 발견되어 일본 기상청에 옮겨졌으나, 1971년에 대한민국으로 반환되었다.[1] 2012년 3월 20일, 반환 이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2] 공식 명칭은 '공주 감영 측우기'이다

개요편집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는 조선 세종 23년(1441년)에 만들어진 후 여러차례 다시 만들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헌종 3년(1837년)에 만들어진 금영측우기가 유일하다. 높이 31.5cm, 지름 29.4cm의 이 측우기는 원통형의 표면 3곳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눈에 띤다. 원통형의 동그란 통은 빗물을 받는 그릇으로 여기에 주척이라 부르는 자가 있어 측우기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쟀다. 화강석 받침에 새겨진 글에는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받침대는 대구에 있던 것으로 측우대와는 별도의 것이다.

금영[3] 측우기는 1910년 당시 공주감영에 있던 것으로, 그 뒤 주척과 함께 기상청으로 옮겨졌다가, 1971년 3월에 반환되어 지금은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다. 2006년 5월 금형측우기 모형을 제작하여 여기에 설치하였다.[4]

특징편집

높이 315mm, 내부 직경 140mm의 원통형으로, 높이는 1척 5천, 지름은 7촌으로 그 크기가 새겨져 있다. 3단으로 분리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5]

관측 기록편집

1800년대에 공주 감영에서 강우량을 측정한 기록이 《각사등록(各司謄錄)》에서 발견되었다.[6]

각주편집

  1. 測雨器의 행방, 《동아일보》, 1978.5.4
  2. 권경성 (2012년 3월 21일). “日서 되찾은 조선의 진짜 보물이… 하나뿐인 '진품 측우기' 41년 만에 공개 기상청, 보물 '금영측우기' 23일까지 전시”. 한국일보. 2012년 3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3월 22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3. 금영(錦營)은 조선시대 충청도 감영을 달리 이르던 말이다.
  4. 공주감영, 복제품 안내문에서 인용
  5. 조희구·나일성, 18세기 한국의 기후변동 -강우량을 중심으로-, 《동방학지》, 1979.
  6. 부경온·권원태·김상원·이현정, 19세기 공주감영 측우기 강수량 18년 복원, 《Atmosphere》, 2006.12.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