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1838년)

조선의 문신, 정치인 (1838–1896)

김규식(金奎軾, 1838년 ~ 1896년 2월 27일)은 조선의 문신, 정치인이다. 자는 우약(雨若)이며 김세호(金世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풍이다. 동명이인인 독립운동가 겸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규식(金奎植)과는 같은 항렬의 먼 친척 형뻘에 해당된다. 단발령 시행을 강행하다가 유인석 휘하의 의병대원에 의해 사살되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김규식
金奎軾
이름
우약(雨若)
시호 충헌(忠憲)
신상정보
출생일 1838년
사망일 1896년 2월 27일
국적 조선
본관 청풍
직업 문신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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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거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올랐다.[1] 1873년 형조참의·영남위유어사를 역임하였고, 1879년과 1888년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89년 나주목사로 재직 중 9월 전라남도 광양현(光陽縣)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 폭도들이 관청을 파괴하고 관리들을 몰아낸 뒤 공금을 훔치는 등의 행패를 부리자, 9월 17일 안핵사로 임명되어 10월 14일 민란주동자 정홍기(鄭洪基)·박상룡(朴尙龍) 등을 잡아 효수하였다.[2] 1889년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병조참판(兵漕參判)이 되었고[1], 그 뒤 1893년 병조참판, 1894년 한성부우윤, 1895년 지방관제개혁 뒤 인천부관찰사, 충주부관찰사 겸 충주부재판소판사에 임명되었다.[2] 1895년 충주부관찰사로 근무 중 단발령이 공포되자 단발령을 철저히 시행하던 중[1] 1896년 2월 충주성을 함락하고 들어온 유인석(柳隣錫) 휘하의 의병(義兵)에게 살해되었다. 나라에서는 크게 애석해하며 증직으로 규장각(奎章閣) 제학을 추서하였고 시호를 충헌(忠憲)이라 하였다.[1]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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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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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관된 사본”. 2017년 5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0월 26일에 확인함. 
  2. 김규식2[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