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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중(金敦中, 1119년 ~ 1170년)은 고려의 문신, 내시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김부식(金富軾)의 아들이다.[1]

생애편집

문과에 장원하여 관직에 올랐다. 내시(內侍)를 지냈다.[2]

1144년 제석(除夕; 섣달 그믐)에 나례(儺禮; 역귀를 쫓는 의식) 때 각 관리들이 잡기(雜技)를 보일 때, 인종이 와서 구경하였다. 내시, 다방, 견룡 등이 서로 재주를 보이고 즐기던 중 내시 김돈중이 연소(年少)하나 기운이 날래어 촛불로써 정중부(鄭仲夫)의 수염을 태웠다.[3] 수염이 불에 탄 정중부는 화를 내며 김돈중을 치고 욕하였다. 그러자 김부식은 노하여 왕께 아뢰고 정중부에게 매질을 가하게 했다.[3][4] 이 일로 정중부와 무신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의종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으나 1151년 환관 정함(鄭函)을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임명하는 것을 반대하여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으로 좌천되었다가 시랑에 옮겨졌다.

그 뒤 김부식이 세운 관란사(觀瀾寺)를 중수하여 아우인 김돈시(金敦時)와 함께 왕의 복을 비는 절로 삼음으로써 의종의 환심을 샀다.

1167년(의종 21) 좌승선(左承宣)이 되었는데, 의종이 봉은사(奉恩寺)에서 연등행사를 마치고 환궁할 때 김돈중의 말이 놀라 한 군사의 화살통에 부딪쳐 화살이 의종의 수레에 떨어진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유시사건(流矢事件)으로 군인들이 죄없이 귀양가게 되어 김돈중에게 더욱 원한을 품게 되었다

1170년 보현원에서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문신들을 제거할 때 김악산으로 도망쳐 숨었으나 자신의 종자의 밀고로 동생 김돈시와 함께 붙잡혀 처형되었다. 후에 목과 사지가 절단된 채 저자거리에 매달렸다. 아버지 김부식 또한 부관참시를 당한다.

가계편집

김돈중이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