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명

김동명(金東鳴, 1900년 2월 4일 ~ 1968년 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정치가, 정치평론가, 수필가, 대학 교수이다.
![]() 金東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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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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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0년 2월 4일![]() |
사망 | 1968년 1월 21일![]() | (67세)
직업 | 시인 정치가 문학평론가 정치평론가 수필가 대학 교수 |
국적 | ![]() |
학력 | 일본 니혼 대학교 종교철학과 학사 |
종교 | 개신교 |
필명 | 아호(雅號)는 초허(超虛) |
활동기간 | 1922년 ~ 1968년 |
장르 | 시문학, 정치평론, 수필 |
부모 | 김제옥(부), 신석우(모) |
배우자 | 지정덕(사별) 이복순(재혼) 하윤주(삼혼) |
자녀 | 슬하 1남 5녀 |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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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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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편집
소속편집
생애편집
1900년 2월 4일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71번지에서 아버지 김제옥과 어머니 신석우 사이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1908년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주하였고 1913년 다시 함경남도 흥남으로 이주하였다. 함경남도 함흥시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함경남도 흥남 등지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활동한 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아오야마 전문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다. 1922년 《개벽》지에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이라는 샤를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시편을 가지고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0년 첫 시집 《나의 거문고》 1936년 47편을 묶어 두 번째 시집《파초》를 간행하였다. 일제에 항거하여 1942년 술노래를 끝으로 해방될때까지 붓을 꺾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민족시인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1947년 월남하여 이화여자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거의 시풍과 서정성에서 벗어나 현실과 정치, 사회적인 풍자와 관념에 관한 글을 집필하였다. 1947년 세 번째시집 《하늘》을 발간, 1955년 시집 《진주만》으로 아시아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55년 《적과 동지》라는 평론을 주로 《동아일보》를 통하여 연재, 예리한 정치 평론을 하였다. 1960년에는 초대 참의원에 당선되어 5·16 군사정변 전까지 정치 생활을 하였다. 그 후 1968년 1월 21일, 3년간 지병으로 앓고 있던 고혈압으로 6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유해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묘소에 안장되었다가 그로부터 42년 후인 2010년 10월 10일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묘소에서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133-1번지 선영으로 유해가 이장, 봉안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재취 부인인 이복순은 이화여전 출신으로 1942년 재혼했지만, 김동명이 최용건의 핍박을 피해 흥남을 탈출하면서 이복순과 두 딸은 두고 왔다.
- 아버지: 김제옥(金濟玉)
- 어머니: 신석우(申錫遇)
- 초취 부인: 지정덕(池貞德, 1937년 사망)
- 아들: 김병우(金炳宇)
- 장녀: 김월하(金月河)
- 차녀: 김월주(金月州)
- 삼녀: 김혜숙(金惠淑)
- 재취 부인: 이복순(李福順, ? ~ ?)
- 사녀: 김월정(金月汀)
- 오녀: 김월령(金月鈴)
- 삼취 부인: 하윤주(河潤珠)
학력편집
경력편집
- 1960초대 참의원 의원
- 1947이화여자대학교 교수
- 1946조선민주당 함경남도당위원장
- 1945흥남 서호중.여자중학교 교장
관련 항목편집
저서편집
- 《나의 거문고》, 《파초》《삼팔선》《하늘》《진주만》, 《목격자》, 《세대의 삽화》, 《적과 동지》, 《나는 증언한다》, 《모래위에쓴낙서》《내마음》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