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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성 (1946년)

김명성(金明成, 1946년 9월 3일 ~ 2001년 7월 24일)은 대한민국야구 감독이다.

김명성
Kim Myeong-Seong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46년 9월 3일(1946-09-03)
출신지 부산광역시
사망일 2001년 7월 24일(2001-07-24) (54세)
선수 정보
수비 위치 투수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아선수권 1969, 1971 서울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1971 서울 야구

생애편집

학창 시절편집

부산 출신으로, 주된 포지션은 투수였고, 부산공업고등학교, 동아대학교를 졸업했다.

짧은 현역 시절, 코치생활편집

실업 야구 팀 한국전력공사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70년에 실업 야구 리그 다승왕을 차지했다. 1977년에 은퇴하여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고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 투수코치를 맡아 프로야구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4년부터 KBS 라디오 야구해설위원으로 맡았다가 1986년 청보 핀토스 투수코치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고 태평양으로 팀명이 바뀐 1988년까지 몸담았지만 그 해 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코치진을 물갈이하여 태평양을 떠나 1989년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로 옮겼고[1] 1990년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또다시 코치진을 물갈이하자 1991년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했다. 그 뒤, 1993년 시즌 후 팀이 한화로 바뀌면서 LG 트윈스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이 과정에서 이광환 감독을 보좌하여 그동안 KBO 리그에서 생소했던 선발-셋업-마무리의 투수 분업 구조를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연고 팀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코치로 부임했다. 1998년 6월 김용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중도 하차하자 감독 대행을 맡았고 이듬해 정식 감독이 되었다.

감독 부임편집

1999년 드림 리그 2위라는 호성적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199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한화 이글스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 매직 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만, 매직 리그 1위 팀이었던 LG 트윈스가 드림 리그 3위 삼성 라이온즈보다 승률이 낮은 바람에 삼성 라이온즈와 치른 준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 못했다. 2001년의 시즌은 다시 단일 리그로 환원되어 4위부터 8위의 게임 차가 2게임밖에 안되는 난전이었다.

사망편집

성적 부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폭음과 줄담배가 잦았었다. 여기에 과로가 겹쳐 시즌이 한창이었던 2001년 7월 24일경상남도 남해군에 있는 친구집에 갔다가 집으로 귀가하던 중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져 급서하였다. 향년 56세였다.

김명성의 급서 후 롯데에 찾아온 암흑기편집

그가 급사한 이후 2001년롯데 자이언츠는 팀 분위기가 하락하게 되어 그 해 최하위를 기록했고, 이후 8-8-8-8-5-7-7로 대표되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어 2007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며 포스트 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평가편집

온화한 인품으로 선수단을 규합하는 지도력을 발휘하여 약팀이었던 롯데 자이언츠를 일약 상위권으로 올려놓았고, 투수 코치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임
김용희
제8대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98년 6월 16일 - 2001년 7월 24일
후임
우용득
  1. “金明成(김명성)씨 삼성 코치로”. 동아일보. 1989년 3월 14일.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