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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金錫範, 일본식 이름: 金山 照 가네야마 미쓰시, 1915년 11월 2일 ~ 1998년 2월 18일)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의 군인이다. 대한민국 해병대 제2대 사령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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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金錫範
생애 1915년 11월 2일 ~ 1998년 2월 18일 (82세)
출생지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안성
별명 호(號)는 강산(江山)
일본식 이름은 가네야마 미쓰시(金山 照)
복무 일제 강점기 만주국군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해병대
복무 기간 1940년 ~ 1960년
최종 계급 만주국군: 상위 상위(上尉)
대한민국군: ROK army Jungjang.svg 중장(中將)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기타 이력 성우회 부회장
자민련 국방외교안보행정특임고문(1995년)

학력편집

생애편집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이다. 1934년 중국에서 신경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의 선양 지역에 일본만주국을 수립하면서 세운 장교 양성 기관인 봉천군관학교에 진학했다. 김석범은 봉천군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하면서 성적이 우수하여 일본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해 수학했다. 일본육사를 1940년 졸업하고 만주국군 장교로 임관했다. 만주국군 중에서도 항일 조직을 소탕하는 부대인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면서 항일 운동을 악랄하게 탄압하였다.[1]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북부에 있던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세력인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와 만주 북서부에 잔존해 있던 대한독립군단을 토벌하기 위한 특수 목적을 띈 독립군 토벌 부대였다. 간도특설대가 살해한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한다. 강간·약탈·고문을 당한 이들도 적잖다. [2]

만주군 상위로 복무하던 중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어 미군정 지역으로 내려왔다. 1946년 대한민국 해군 중위로 임관하여 해군통제부 참모장과 방위사령관 등을 지냈다. 김석범은 박정희정일권, 백선엽, 이한림, 신현준, 원용덕, 김창룡 등이 형성한 국군 내의 대표적인 만주국군 인맥이었다.[3] 한국 전쟁 발발 후 손원일의 권유에 따라 해병대로 전과했고, 해병 제1연대장, 해병대 부사령관을 거친 뒤 1953년부터 신현준에 뒤를 이어 약 4년 동안 대한민국 해병대 제2대 사령관을 맡았다.

1953년 육군대학, 1958년 국방대학원을 졸업했고, 김정렬 국방부장관 특별보좌관을 거쳐 1960년에 해병대 중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재향군인회를 창설하여 부회장에 올랐고, 1960년대에 한국기계 사장과 성우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묘지는 대전의 국립현충원에 있다. 장군1-071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방학진 (2006년 10월 1일).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겼던 자들”. 작은책. 2008년 4월 7일에 확인함. 
  2. “일본군 장교 되어 독립군 토벌했는데, 독립유공자 묘역 옆에 잠들다니…”. 한국일보. 2019.07.30. 
  3. “일제괴뢰 만주국서 끈끈한 '군맥' 다져 - 해방후 군부장악.. 5.16때 정치 전면에”. 세계일보. 2006년 8월 6일. 2007년 5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4월 7일에 확인함. 
전임
신현준
제2대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
1953년 10월 15일 - 1957년 9월 4일
후임
김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