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언어철학자)

대한민국의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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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金善琪, 1907년 3월 21일 ~ 1992년 11월 11일)는 대한민국언어학자, 한글학자이며 교육자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호는 무돌(무지개돌)이다.

생애 편집

젊은 시절 편집

김선기는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 343번지, 높은집 (지금의 군산시 옥구군 임피면)에서 출생하였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1931년 1월에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원으로 당시 월급 30원을 받고 취직한 이후에, 1932년 12월 다른 5명의 회원(이갑, 이만규, 이상춘, 이세정, 이탁)과 더불어 추가로 총회 위원이 되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18명의 위원이 1931년 1월에서 1934년 6월 사이 약3년 동안 125회를 모여서 433시간을 들여서 완성될 수 있었다.

1937년 런던 칼리지 대학교에서 Phonetics of Korean로 석사학위를 지도교수 대니얼 존스로부터 받은 후, 1938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임 중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9월 12일 함흥 형무소 미결수(975번)로 투옥 당한 이후 흥원경찰서에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1943년 9월 10일 기소유예로 출감하였으나 유죄판결로 인해 연희전문에서 해직되었다. 1944년 3월에는 함경도 단천 광산에서 노무주임으로 마지 못해 일하다 웅기 감투봉으로 쫓겨가 참호를 파 노역에 시달리던 가운데,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의 패망으로 단천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 왔다.

연구와 교육 활동 편집

대니얼 존스의 음성학 연구를 한국어에 적용하여, 최초로 영어의 모음 사각도를 약간 변형시켜서 한국어 타원 모음도를 창안하였다. 음성학 강의를 통해서 국어 음성학에 추춧돌을 놓는 공헌을 하였으며 이론적으로 음성학 연구를 접근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비교 언언학적 방법론으로 우리말의 기원 및 향가 연구와 만주어, 다구르어, 몽골어 연구에까지 광범하고 다양한 언어학 논제들에 대해 여러 논문을 집필하였다.

광복 후 미군정 하에 《새한신문》을 발행하였다. 1946년 3월 연희 대학으로 복직해 영어음성학을 강의하였으며, 1947년부터 1948년 문과대학성 서리(한림원 원장)이란 보직을 맞아 일하였다. 1950년 1월부터 1958년 서울 대학 언어학과 주임교수로 활동하였으며 1951년에는 전곡 전시 연합대학 교무처장을 역임하고 1952년에는 미국 코넬 대학교 교환교수로 초빙되었다.

1958년 12월 문교부 차관직에 임명되어 한글전용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한글간판 장려 정책을 널리 펼치었으나 4.19 혁명으로 인해서 차관직으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5.16 쿠테타 이후 정치적 격동기였던 1963년 김준연 선생의 추천으로 자유민주당 중앙 위원회 의장으로 잠시 정치계에서 활동을 하였다. 다시 학계로 돌아 가신 계기는 명지학원 유상근 박사의 초빙으로 명지대학 초대 대학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1975년 명예박사학위를 동대학으로부터 수여하였다.

무돌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그 수가 적지 않다. 서울대 언어학과에서 배출한 학자는 허웅, 김방한, 신익성, 안사균, 성백인, 손호민, 이현복, 배영경, 박형달, 전영표 등이다. 연세대 영어영문과에서 배출한 많은 제자 중 대표적인 인물은 허웅(서울대학교 교수), 김방한(서울대학교 교수), 성백인(서울대학교 교수), 이현복(서울대학교 교수), 손호민(미국 하와이 주립학교 교수)과 김동길(연세대학교 교수)이다.

1992년 11월 11일 서울 강동구 소재 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인해 향년 만 85세로 타계하였다.

연구 활동 편집

저서 편집

주요 논저로는 <피히테의 언어관>(1932), <철자법의 원리>(1932), <경음의 본질>(1933) Phonetics of Korean (1937;1970), <기준 모음과 모은 도표>(1938), National English Reader(1948), <문화 정책론>, ,잡음씨는 왜 죽었나>(1965), <향가의 새로운 연구>(1967~69),<한·일·몽 단어비교-계통론의 깃돌->(1968), <A Comparative Study of Numerals of Korea, Japanese and Altaic Languages>(1968),<한글의 새로운 기원설>(1970), <A Study of Mongolun Niguca Tobcigan-in view of Comparative Altaic Linguistics->(1970), <로걸대의 받침소리>(1972),<동국정운의 ㅃ, ㄸ, ㄲ의 음가>(1972), <The Sound Value of the Letter “어” in Hunmingjeongeum><1972>,<향가 음독자 연구 방법론의 하나>(1973), <향가 연구 방법>(1976), <가랏말의 덜(한국어 어원)>(1976), <한글 학회의 발자취>(1977)등이 있다.

위의 논문들은 1967년부터 1977년 명지대 논문집과 한글학회 논문집에 실렸으며, 1967년에서 1970년사이에 <현대 문학>에 새로운 향가 연구를 집필하여 유사 향가 14수와 균여전 11수를 현대어로 해설하였다.

학회 활동 편집

무돌 선생은 1930년 이래 한글 학회(조선어 학회)에 깊에 관여하였으며, 1935년 구제 음성학 협회 회원으로, 그리고 1940년부터 1970년까지 한글 학회 이사로 약 30년간 활약하였다. 1965년 이래 세종대왕 기념 사업회 이사로도 활약하시고 1975년 이후에는 몽골학회 회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가족 및 친척 관계 편집

  • 아버지: 김철중(1883년 생, 동아일보 편집인)
  • 어머니: 고대준(1879년 생)
  • 본인: 김선기
  • 부인: 사별한 김은성(1911년 생)은 배화여고 제1회 졸업생이며, 배화국민학교 교사를 역임했다. 한글학자 김윤경선생의 제자로 남편 김선기를 도와 한글운동을 하였으며 전국문맹퇴치운동에 참여하였다. 김은성과 사이에 김두순(건축가), 김우순(사업가), 김성순(미국 이주)과 세딸 김혜경(서강대학교 윤능민교수의 부인), 김란경(포항공대 김병원교수의 부인), 김지경(의사 유재휘의 부인)을 두었다.
  • 재혼한 이운경(1921년 생) 동지사 대학 경영학과 졸업)하고 과의 사이에 김장순(지아이엠 시스템 사장)과 네딸 김문희(전 동남보건 전문대학 교수/사업가 서정준의 부인), 김은희(서양화가/재미 사업가 김문철의 부인), 김보희(연세대 객원교수/한국외국어 대학 반병률교수의 부인), 김관희(서강대학교 임채호교수의 부인)을 두었다. 11명의 자녀는 모두 결혼하여 25명의 손자, 손녀가 있다.

같이 보기 편집

참고 문헌 편집

  • 《얼음장밑에서도 물은 흘러》(한글학회)
  • 《명지어문학 제 9호: 별책》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