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 (1913년)

김성곤(金成坤, 1913년 7월 14일 - 1975년 2월 25일)은 대한민국기업인, 정치인으로 호는 성곡(省谷)이다.

김성곤
출생1913년 7월 14일(1913-07-14)
대구광역시 달성군
사망1975년 2월 25일(1975-02-25) (61세)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
본관김해
직업기업인, 정치인

학력편집

생애편집

유년기편집

김해김씨 김성곤은 1913년 7월 14일에 현재의 대구 달성군에서 태어났다.

1929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지만, 4학년 때 교내 항일 운동의 주동으로 퇴학당하여 다시 상경,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삼공유지합자회사 설립편집

1937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년에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뒤 대두유 비축으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이후 1948년 금성방직을 인수한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에 화재가 난다. 그 뒤 1952년에 동양통신을 창간하였으며, 1953년에는 연합신문을 인수, 1956년에는 태평방직, 아주방직을 인수하는 등 기업가로서 성공을 이어갔다.

정계 입문 및 기업활동편집

1958년에는 자유당소속으로 달성에서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4.19혁명으로 인해 한때 정계 은퇴하였으며 5.16 군사정변이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그 이후 1959년 국민학원(국민대학교)를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60년에 대한유도회 회장에 피선되었으며 1962년에 쌍용양회를 설립한다. 그 이후 1963년에는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며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이 되었다. 1965년에는 민주공화당 재정위원장, 당무위원이 되었으며 성곡언론문화재단, 성곡학술문화재단을 창립하였다. 1967년에 쌍용제지를 설립하였으며, 제7대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0.2 항명 파동편집

1967년 김성곤은 길재호, 백남억, 김진만과 함께 민주공화당 내의 핵심인물이 된다. 그 이후 1971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71년 10월 2일에 야당과 동조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명령을 어기고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10.2 항명 파동 이라 한다. 그 이후 김성곤은 10.2 항명 파동 의 주동인물로 지목받아 경위조사를 받고, 정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뒤 1973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제8대 회장을 지냈으며, 1974년에는 대한양회 인수, 한국신문연구소 회장 취임을 했다. 그 뒤 1975년 2월 25일 사망하였으며 가족장으로 국민대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가 1984년 강원도 평창에 이장되었고, 2014년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재이장되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가족편집

부인 김미희(1920 ~ 1981) 사이에서 3남 3녀가 태어났다.

  • 장녀: 김인숙
  • 차녀: 김의정(1941 ~ )
  • 장남: 김석원(1945 ~ )
  • 3녀: 김의령
  • 차남: 김석준(1953 ~ )
  • 3남: 김석동(1960 ~ )
  전임
조재천
제4대 국회의원(경북 달성군)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자유당
후임
박준규
 
  전임
박준규
제6대 국회의원(경북 달성군·경산군·고령군)
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민주공화당
후임
김성곤
 
  전임
김성곤
제7대 국회의원(경북 달성군·경산군·고령군)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민주공화당
후임
김성곤
 
  전임
김성곤
제8대 국회의원(경북 달성군·경산군·고령군)
1971년 7월 1일 ~ 1971년 10월 16일
민주공화당
후임
(재보궐)박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