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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양(金時讓, 1581년 ~ 1643년)은 조선의 공신이다. 초명은 시언(時言),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시호는 충익(忠翼). 본관은 (구)안동이다. 김언묵(金彦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석(金錫)이고, 아버지는 비안현감 김인갑(金仁甲)이며,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洪氏)로 서윤(庶尹) 홍이곤(洪以坤)의 딸이다.

생애편집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다.1607년 주서(注書)가 되고 1609년(광해군 1)에 예조좌랑으로 지제교(知製敎)를 겸했으며, 1610년 동지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11년(광해군 3) 전라도 도사로 향시를 주관할 때 시제(試題)에 왕의 실정(失政)을 비유한 문제를 출제했다 하여 종성(種城)에 유배되었다가 1616년 영해(寧海)에 이배(移配)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예조 좌랑·병조 정랑·수찬(修撰)·교리(敎理)를 역임하였고,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이원익의 종사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이 평정된 후 응교(應敎)로 문학을 겸임하고, 이어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1625년(인조 3) 응교(應敎)가 되어 문학을 겸했고, 이듬해 인헌왕후의 산릉역(山陵役)에 공로가 많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자 평안도관찰사 겸 체찰부사에 임명되었고 이어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의정부의 의논에 따라 도원수와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를 겸하였다.

그러나 왕의 뜻을 어기고 척화를 주장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1634년 지중추부사에 서용(敍用)되었다. 그 뒤 한성판윤을 거쳐 호조판서 겸 동지춘추·세자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이 되었다가 9월에 다시 도원수에 임명되었다. 이듬 해 강화유수로 나갔다가 병으로 사직하였다.

1636년 청백리에 뽑혀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오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었으나 눈병으로 사직하고 향리인 충주로 내려갔다. 1641년 ≪선조실록≫을 개수할 때 대제학 이식(李植)과 총재관(總裁官) 홍서봉(洪瑞鳳) 등의 추천으로 다시 판중추부사 겸 춘추관사를 제수받았으나 지병인 안질로 실록개수(實錄改修)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전적(典籍)과 경사(經史)에 밝았다. 회령의 향사(鄕祠)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하담파적록 荷潭破寂錄≫·≪하담집≫·≪부계기문 ?溪記聞≫ 등이 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가족 관계편집

  • 증조부 : 김언묵(金彦默)
    • 할아버지 : 김석(金錫)
      • 숙부 : 김충갑(金忠甲)
      • 숙부 : 김제갑(金悌甲)
      • 아버지 : 김인갑(金仁甲)
      • 어머니 : 홍이곤(洪以坤, 남양홍씨)의 딸
        • 부인 : 이대수(李大遂, 경주이씨)의 딸
          • 장남 : 김곡(金穀)이고
          • 자부 : 윤성득(尹誠得)의 딸
            • 손자 : 김추만(金秋萬) - 생부 : 관찰공
          • 차남 : 김연(金緣)
          • 자부 : 허실(許實)
            • 손녀 : 서경조(徐敬祖)에게 출가
          • 장녀 : 이도장(李道長)에게 출가
            • 외손자 : 이원정(李元禎)
            • 외손자 : 이원록(李元祿)
            • 외손자 : 이원례(李元禮)
            • 외손자 : 이원지(李元祉)
            • 외손녀 : 장벽(張銢)에게 출가
          • 차녀 : 김홍석(金弘錫)에게 출가
            • 외손자 : 김제(金濟)
            • 외손자 : 김오(金澳)
          • 삼녀 : 민점(閔點)에게 출가
            • 외손자 : 민안도(閔安道)
            • 외손자 : 민종도(閔宗道)
            • 외손자 : 민홍도(閔弘道)
            • 외손자 : 민주도(閔周道)
        • 측실 : 이름모름
          • 서자 : 김변(金變)
          • 서자 : 김만(金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