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
김옥숙(金玉淑,[1] 1935년 9월 8일[A]~)은 대한민국의 제13대 영부인이다.[2] 경북대학교를 중퇴한 후 노태우와 결혼했으며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된 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영부인으로 있었다.
김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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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숙(1991년) | |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 배우자 | |
임기 | 1988년 2월 25일~1993년 2월 24일 |
전임 | 이순자 |
후임 | 손명순 |
대통령 | 노태우 |
이름 | |
로마자 표기 | Kim Ok-suk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35년 9월 8일 | (89세)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 |
국적 | 대한민국 |
성별 | 여성 |
학력 | 경북대학교 가정교육학 수료 |
본관 | 안동 |
부모 | 아버지: 김영한 |
배우자 | 노태우 |
자녀 | 노소영, 노재헌 |
종교 | 천주교(세례명:마리아) |
상훈 | 무궁화대훈장 |
김옥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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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표기: | 김옥숙 |
한자 표기: | 金玉淑 |
개정 로마자 표기: | Gim Oksuk |
매큔-라이샤워 표기: | Kim Oksuk |
예일 표기: | Kim Okswuk |
공식 로마자 표기: | Kim Ok-suk |
생애
어린 시절과 가족
1935년 9월 8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에서 아버지 김영한(金永漢)과 어머니 남양 홍씨 홍무경(洪戊庚) 사이의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1] 증조부 김광규[B]는 경상도 안동대도호부(경북 안동시) 출신으로 1891년[C] 증광시 진사시에 3등 138위로 입격한 경북의 명문 사족(동양의 귀족)이다.
친오빠는 김익동(金益東) 경북대학교 총장이며, 김복동(金復東) 제14·15대 국회의원이다. 고종 사촌 동생은 박철언(朴哲彦) 제10대 정무부 장관이며, 이종 사촌 동생은 금진호(琴震鎬) 제31대 상공부 장관이다.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학에 진학하였다가 교하 노씨 노병수(盧秉壽)의 아들 노태우와 결혼[D]하였다.
영부인 시절
1987년 12월 16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대선에서 노태우가 승리하여 대한민국의 12대 대통령이 되자 김옥숙 여사는 1988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영부인이 되었다. 영부인으로 취임한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등 국가적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옥숙 여사는 20년 이상 대한민국의 여러 도시와 외곽에 위치한 고아원과 요양원 등을 비공개적으로 방문하여 고아에 대한 인도적,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
말년
1993년 남편 노태우[E]가 제13대 대통령에서 퇴임한 후에도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2020년 5월 29일, 노재헌이 광주 망월동 5.18 구묘역의 이한열의 묘소를 찾았는데 김옥숙 여사의 이름으로 조화를 헌화하였다.[4]
2021년 10월 30일 영결식에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손에 쥔 모습으로 참석했고, 비서들의 부축을 받으며 헌화하였다. 영결식 직후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타고 온 차로 이동하는 길에 영결식에 와 준 참석자들에게 손인사를 하였다. 아들 노재헌은 어머니께서 남편인 노태우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을 왔다가다 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남편의 장례식 중에도 빈소에 상주하지 않고 연희동 자택과 병원을 왕래하였다.
김옥숙 여사는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한 적이 없으며 복지기관 방문 등의 단독 일정도 무조건 비공개였다. 그래서인지 대통령 배우자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는 평을 받는다. 제6공화국 수립 이후인 1988년 5월 18일, 극비리에 광주 5.18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5] 사망하는 순간까지 광주 시민을 유혈 진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전두환(제11·12대 대통령)과 그에 적극 동조하는 이순자와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학력
서훈 내역
- 1988년: 무궁화대훈장
가족 관계
- 부계(父系)
김영한 (金永漢) 1900~1980 | 홍무경 1908~1997 | ||||||||||||||||||||||||||||||||||||||||||||||||||||
김진동 1927~ | 김익동 1930~2022 | 김복동 (金復東) 1933~2000 | 김옥숙 (金玉淑) 1935~ | 노태우 (盧泰愚) 1932~2021 | 김정숙 1937~ | 금진호 (琴震鎬) 1932~2024 | |||||||||||||||||||||||||||||||||||||||||||||||
노소영 (盧素英) 1961~ | 최태원 (崔泰源) 1960~ | 노재헌 (盧載憲) 1965~ | |||||||||||||||||||||||||||||||||||||||||||||||||||
- 시계(媤系)
노병수 (盧秉壽) 1901~1940 | 김태향 (金泰香) 1907~1999 | ||||||||||||||||||||||||||||||
노태우 (盧泰愚) 1932~2021 | 김옥숙 (金玉淑) 1935~ | 노재우 1937~ | |||||||||||||||||||||||||||||
노소영 (盧素英) 1961~ | 최태원 (崔泰源) 1960~ | 노재헌 (盧載憲) 1965~ | |||||||||||||||||||||||||||||
그외 것들
- 경순왕(敬順王, 927. 11.~935. 12. 12.)의 재종질 김선평(金宣平, 930.~?) 태사의 직계 후손으로 신라 왕실의 후손이다.
- 2021년 10월 26일, 노태우(盧泰愚, 1932. 12. 4.~2021. 10. 26.) 대통령 서거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06년 병상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실과 더불어 남편을 따라 2021년 4월,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 입관식은 오웅진 신부의 주례 하에 천주교 예식으로 진행되었다.
- 1988년 2월 25일, 대관한 당일 취임식 직후 광주광역시를 찾아 극비리에 망월동 5.18 구묘역을 방문하여 학살된 사람들에 대한 희생에 대하여 참배했다.[5]
- 사저에 고용된 사람의 수는 10명으로 알려져 있다.
- 1990년, 구세군에 5천만원을 기부, 2010년 모교인 경북여고에 5천만원을 기부하였다.
대중 매체
각주
내용
출처
- ↑ 가 나 다 “새퍼스트레이디 金玉淑(김옥숙)여사 온화한 성품으로「그림자内助(내조)」”. 매일경제. 1987년 12월 18일.
- ↑ 이해준 (2021년 10월 30일). “노소영 손잡고 영결식 참석…김옥숙 여사, 끝내 눈물 흘렸다”. 2024년 11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4년 11월 6일에 확인함 – 네이버 뉴스(보존) 경유.
- ↑ 가 나 박기범 (2021년 10월 26일). “[연보] '제6공화국' 노태우 전 대통령 생애”. 《뉴스1》 (서울). 2024년 11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4년 11월 6일에 확인함 – 네이버 뉴스(보존) 경유.
- ↑ 채혜선 (2021년 4월 12일). “고비 넘긴 노태우…아들이 "광주 갈까요?" 물으면 눈 깜빡”. 《중앙일보》. 2024년 11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4년 11월 18일에 확인함 – 네이버 뉴스(보존) 경유.
- ↑ 가 나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1988년 5·18묘역 참배했다”. SBS. 2019년 8월 29일.
참고 문헌
- 《월간중앙》 (2001년 9월호) 〈친인척 관리 스타일 전혀 다른 3인의 군 출신 대통령〉
외부 링크
- 위키미디어 공용에 김옥숙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여성신문》 (2007. 3. 9.) 이야기 여성사 -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Archived 2007년 9월 29일 - 웨이백 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