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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항(金宇杭, 1649년 ~ 1723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제중(濟仲), 호는 갑봉(甲峯),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숙종 때 우의정을 지냈다. 소론이지만, 노론 대신들과 원만하게 지냈고 신임사화 때 노론 4대신 등을 구명하려다가 파직되었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출신으로서는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이다.

생애편집

1681년(숙종 7) 식년 문과에 급제해 지평이 되고 정언으로 임명되었으나, 기사환국 때 송시열김수항, 김수흥 등과 서인으로 지목되어 유배되고 이조참판이던 이상을 변호하여 위리안치되었지만, 이후 갑술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하자 수찬, 부교리, 부수찬, 교리, 필선, 집의를 거쳐 승지로 초배되고 회양부사와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다시 승지가 되고 대사간에 이어 개성유수를 거쳐 대사간, 도승지, 예조참판, 이조참판을 지내고 도승지, 대사헌, 이조참판, 대사성을 거쳐 예조참판, 경기도관찰사를 하며 소론으로 당적이 속했는데 남구만, 박세채 등과 가까웠지만 박세채 등과 소론 온건파의 중심인물이 되어 노론 대신이던 김창집, 이이명, 이유, 이여, 서종태, 이건명 등과도 가까웠다.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재상으로 승진해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호조판서와 수어사로 북한산성을 수축했는데 문제가 발생하자, 소론으로써 자기의 당여를 두둔하지 않고 엄정하게 사실을 규명해 소론의 배척을 받기도 했다. 이후 지의금부사, 호조판서, 우참찬, 예조판서를 거쳐 1713년 우의정이 되었다. 당적이 소론이지만, 대체로 노론 대신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판중추부사로 내의원도제조를 겸하였고, 경종 때 영중추부사가 되는데 그는 소론의 거두였지만 신임사화 때 노론 대신들이 화를 입자 노론 4대신과 판서급 대신들을 살리려고 했으며, 김일경의 사친추존론을 반대하다가 화를 입었다. 영조 때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