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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金雲龍, 1931년 3월 19일 ~ 2017년 10월 3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스포츠 행정가이다.[1]

김운용
2012년 당시의 김운용
국적대한민국
출생1931년 3월 19일(1931-03-19)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대구
사망2017년 10월 3일(2017-10-03) (86세)
대한민국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 병원
직업스포츠기관단체인, 대학교수
군복무육군 소령 전역
의원 선수1
정당무소속

이력편집

김운용은 연희대(현재의 연세대학교) 출신으로 육군 갑종사관 임관 후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특히 미국으로 세 차례 유학을 다녀오며 익힌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1군사령관 송요찬의 부관으로 일했다.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인 송요찬의 부관으로 근무하였으며, 경찰의 실탄 요청을 송요찬이 거부하였다고 증언하였다.[2]

1971년부터 1991년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73년부터 2004년까지 세계 태권도 연맹을 역임했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추진했으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년부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에는 부위원장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2001년 IOC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2005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에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2017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세브란스병원에서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3][4]

학력편집

약력편집

각주편집

  1. 배민욱 (2011년 4월 18일). "국민이 하야 원해? 그럼 하지"…4·19 생생한 증언”. 《뉴시스》 (서울). 2017년 10월 3일에 보존된 문서. 2017년 10월 3일에 확인함. 
  2. 이문영, “4·19때 경찰이 계엄사령관에 총탄 10만발 빌려달라 요청”, 한겨레신문
  3. 배진남 (2017년 10월 3일). '한국스포츠 거목'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3일 오전 타계(종합3보)”. 《연합뉴스》 (서울). 2017년 10월 3일에 보존된 문서. 2017년 10월 3일에 확인함. 
  4. 정명의 (2017년 10월 3일). “거목이 쓰러지다…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 걸어온 길”. 《뉴스1》 (서울). 2017년 10월 3일에 보존된 문서. 2017년 10월 3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김종열
제31·32·33대 대한체육회 회장
1993년 2월 24일 ~ 2002년 3월 12일
후임
이연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