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후
김유후(1941년 ~)는 제20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김유후 | |
---|---|
출생 | 1941년 |
경력 | 제20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
직업 | 법조인 |
생애
편집1941년 서울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15회 고등고시 사법과에서 합격하였다. 1964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된 김유후는 재직 기간 중에 사업하는 동창생들을 만나지 않는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해 '공무원의 사표'라는 칭찬을 들었다.[1]
법무부 검찰국 검찰4과장으로 있으면서 1977년 10월 15일 내한하는 벤저민 시빌레티 미국 법무성 차관보와 포올 미첼 한국로비활동 담당 검사를 상대로 박동선 사건을 협의하는 한국 측 대표로 결정되었다.[2]
서울지방검찰청 3차장검사로 있으면서 저질연탄 폭리 사건을 파헤쳤으며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임명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으면서 동의대 사태를 "무리없이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계급 정년 3개월을 앞두고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승진하였다.[3]
박태준 포철 전 회장 변호인을 맡았던 김유후는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도 선임되어 비자금 소명서를 작성하여 검찰에 제출하면서 법률 자문을 하느라 곤란을 겪는 것을 보고 TK와의 악연이 거론되었다.[4]
가족 관계
편집부인 김용래와 사이에 아들 2명이 있는 김유후는 이회창의 사위인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지낸 최명석 김앤장 변호사의 이모부다. 손윗동서 최기선의 아들이 최명석 변호사다.
김유후의 부친은 김형근 (1915년)이며 김형근 (1915년)의 둘째형 김광근(金光根: 1903-1947)도 일제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판사를 지내다 해방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김광근·김형근 두 형제는 친일인명사전에 나란히 올라 있다. 그 부친 김윤면(金潤冕: 1876-1947.02.02.)은 일제 때 종로 1가에서 무명을 파는 백목전(白木廛)으로 돈을 번 거상(巨商)으로, 1920년 당시 개인 기업으로는 세 번째 고액납세자였다.[5]
경력
편집- 1964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66년 군법무관
- 197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75년 광주고등검찰청 검사
- 1977년 법무부 검찰국 검찰4과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겸임)
- 1979년 대검찰청 특수부 3과장 겸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 1980년 청와대 정부비서관
- 1980년 서울지방검찰청 3차장검사
- 1981년 부산지방검찰청 2차장검사
- 1982년 부산지방검찰청 1차장검사
- 1983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겸 대검찰청 검사
- 1985년 법무부 법무실장
- 1987년 법무부 검찰국장
- 1989년 3월 29일 ~ 1991년 4월 17일 제31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 1991년 4월 18일 ~ 1992년 1월 31일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1992년 2월 6일 ~ 1993년 2월 24일 대통령비서실 사정수석비서관 (차관급)
- 1993년 2월 24일 ~ 1993년 9월 14일 제20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 김유후법률사무소 변호사
- 2018년 7월 28일 ~ 2026년 7월 27일 학교법인 홍익학원 이사
- 재단법인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감사
각주
편집- ↑ 192년 2월 2일자 한겨레
- ↑ 1977년 10월 10일자 동아일보
- ↑ 1991년 4월 16일자 경향신문
- ↑ 동아일보 1995년 10월 31일자
- ↑ “보관된 사본”. 2019년 1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1월 1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전임 김두희 |
제28대 법무부 검찰국장 1987년 6월 8일 ~ 1989년 3월 24일 |
후임 박종철 |
전임 김영일 |
제2대 대통령비서실 사정수석비서관 1992년 2월 6일~1993년 2월 24일 |
후임 (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