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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경(金益炅, 1629년 ~ 167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예송 논쟁 당시 서인 측의 논객이었다. 사계 김장생의 손자이며 김익희, 김익겸, 김익훈의 동생이다. 신독재 김집은 그의 숙부였고, 광성부원군 김만기, 서포 김만중은 그의 조카이다.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종조부이다. 본관은 광산.

생애편집

어려서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그 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낸 뒤 사헌부 집의(執義)를 거쳐 당상관으로 승진했다. 이후 형조참의, 동부승지를 역임한 후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올랐다.

1674년(현종 15)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죽은 인선왕후에 대한 계모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제2차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이때 김익경은 스승 송시열, 서인 김수항 등과 함께 주자가례에 의한 대공설(大功設)을 근거로 9개월복 설을 주장하였으나 허목 등의 기년설(朞年說) 만1년설이 채택되자 양성(兩性)으로 유배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할아버지 : 김장생(金長生)
    • 아버지 : 김반(金槃)
    • 의모 : 연산서씨(徐氏), 증참판 서주(徐澍)의 딸
      • 형님 : 김익열(金益烈)
      • 형님 : 김익희(金益熙)
      • 형님 : 김익겸(金益兼)
    • 생모 : 김씨, 첨추(僉樞) 김진려(金進礪)의 딸
      •  : 김익훈(金益勳)
      • 동생 : 김익후(金益煦)
        • 장남 : 김만재(金萬裁)
          • 손자 : 김진동(金鎭東)
        • 차남 : 김만견(金萬堅)
          • 손자 : 김진악(金鎭岳)
          • 손자 : 김진성(金鎭成) - 김만길에게 양자로 감
        • 삼남 : 김만지(金萬至)
          • 손자 : 김진조(金鎭朝)
          • 손자 : 김진세(金鎭世)
        • 사남 : 김만근(金萬謹)
          • 손자 : 김진륜(金鎭倫)
          • 손자 : 김진중(金鎭中)
          • 손자 : 김진대(金鎭大)
        • 딸 : 영의정 심지원(沈之源)의 손자 심정규(沈廷揆)에게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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