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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金台鉉, 1261년 ~ 1330년 11월 16일(음력 10월 6일))은 고려의 학자이다. 자는 불기(不器), 호는 쾌헌(快軒)[1], 본관은 광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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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문에 힘쓰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승지를 지냈다. 밀직부사로 원에 갔을 때, 원 황제가 간쑤성에 가 있으면서 "진공사는 모두 베이징에 머물라"고 하자 "황제가 있는 간쑤성에 가는 것이 우리 왕의 명령이니 어길 수 없다" 하며 간쑤성에 가서 황제를 만났다. 이에 원 황제가 그의 충성심에 탄복하여 낭중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귀국 후 벼슬이 중찬에 이르렀다. 저서로 《동국문감》이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가족관계편집

전기 자료편집

  • 『고려사』 권110, 「열전」23, 김태현
  • 권근, 『양촌집』 권35, 「동현사략」, 정승 김태현
  • 최해, 『졸고천백』 권1, 김 문정공 묘지

각주편집

  1. 권근, 『양촌집』 권35, 「동현사략」, 정승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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