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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은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법조인이다.[1]

생애편집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1941년 일본 중앙대 예과를 졸업하고 1952년 고등고시 사법과 제3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5년동안 군법무관을 하다가 1959년 판사에 임명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1960년 8월 4일 광주고등법원 판사[2] 1963년 전주지방법원 수석 부장판사 1968년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1970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청주지방법원장 1975년 광주지방법원장 1976년 대전지방법원장 1979년 광주지방법원장 겸 전남 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내다가 광주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5월 24일에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으나[3] 1981년 10월 대법원 판사 재임명에서 탈락했다.[4]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재직하던 1959년 8월 3일 보안법 파동으로 데모를 하다 즉결심판인 치안재판에서 5일 구류 처분을 받은 민주당 (대한민국, 1955년) 익산갑 구당위원장 조규완 등 4명에 대해 무죄판결했다.[5]

전주지방법원에서 재직하던 1968년 5월 22일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남파하여 부안에 보트로 상륙해 정읍 비봉산 (정읍)에서 경찰과 교전하다 체포된 임병욱(44세)에게 반공법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했다.[6]

대구고등법원에서 재직하던 1969년 3월 21일 과외를 하다가 귀가하던 초등학생을 칼로 살해하고 동해안에 시체를 버려 원심에서 최고 사형에서 최하 징역8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피고인 김금식 등 7명에 대해 "김금식이 대구교도소에서 불법 출소한 사실이 없고 범행에 대한 진술은 모두 허위자백이었다"고 하면서 원심을 파기하고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7]

1998년에 중앙고등학교 개교 90주년 기념한 교우의 날에서 자랑스러운 중앙인에 선정되었다.[8]

각주편집

  1. 경향신문 1980년 5월 26일자
  2. 경향신문 1960년 8월 4일자
  3. 동아일보 1980년 5월 24일자 매일경제1980년 5월24일자
  4. 매일경제 1981년 11월 14일자
  5. 동아일보 1959년 8월 3일자
  6. 동아일보 1968년 5월 22일자
  7. 경향신문 1969년 3월 21일자
  8. 동아일보 1998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