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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통정(金通精, ? ~ 1273년)은 고려 원종 때 장군이다. 삼별초(三別抄)의 장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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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삼별초(三別抄)의 장수로, 1270년(원종 11년) 강화에서 배중손과 함께 개경 환도를 반대하고 항몽(抗蒙)의 기치를 들었다.

서해의 연안 일대를 공략하면서 남하하여 진도를 거점으로 몽골과 고려에 완강히 항전하여 세력을 떨쳤다. 1271년(원종 12년) 여·몽 연합군에 패하여 배중손을 비롯하여 많은 지도 인물이 전사하자 군사를 이끌고 탐라(耽羅, 제주도)에 들어가 재기(再起)를 다짐했다.

남해안 지방을 공략하던 그는 수차의 항복 요청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다가, 1273년(원종 14년) 김방경, 흔도, 홍다구(洪茶丘) 등이 전함 160여 척을 거느리고 정벌하여 오자 끝까지 싸우다 결국엔 자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죽음과 함께 몽골와의 항쟁은 일단 진압되었다.

설화편집

김통정은 강화도에서 태어 났다. 전설에 만삭이 된 여인은 옥동자를 낳았는데, 아이는 온몸에 비늘이 돋아 있었고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돋아나고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수 없으나 마을 사람들은 질통정으로 불렀다고 한다. 질이 김과 비슷하므로 김씨가 되었다고 한다. 김통정은 자라면서 활을 잘 쏘고 무예에 뛰어나 삼별초을 이끄는 장군이 되었다.

김통정은 전남 진도, 광주 지역에서 몽골에 대항하다가 고려 관군에 패배하고 제주도로 근거지을 옮겼다. 제주도 설화에 따르면 김방경은 김통정을 죽이고, 그의 아내도 태기가 있자 불에 태워 주살했다고 한다. 고려는 그를 반란자로 기록하였으나 제주도 사람들, 즉 민중들에게 김통정은 외세에 저항하는 자주적인 영웅으로 인식이 있었서, 김통정에 대한 여러 설화와 이야기가 전해진다.

평가편집

그는 활약은 일제강점기에 비유하면 독립운동에 해당하지만, 삼별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일각에서는 반란자로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같이 보기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몽골과의 항쟁〉"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