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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섭(金夏涉, 일본식 이름: 金本夏涉 또는 金本安民, 1887년 12월 ~ ?)은 일제 강점기함경남도 지방 유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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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함경남도 함흥부 출신이다. 1919년에 함흥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과 매일신보 함흥지국장이 되는 등 이 지역의 유지로 활동했다. 기업인으로서는 함흥택시주식회사 전무를 지냈고, 함경남도 도회의원, 함흥부 부회의원, 함흥수리조합장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도평의회원으로 4기, 학교평의회원으로 2기 동안 활동했으며, 1920년에 도회의원으로 취임하여 1934년에 물러날 때까지 14년 동안 재직했다. 그 사이 1931년부터는 함흥부 부회의원을 맡았다. 1927년에 함흥수리조합이 창설될 때 부위원장에 올랐고, 1929년에 부조합장을 거쳐 1932년에는 조합장이 되었다.

1934년 함흥상공회의소가 설립되었을 때 의원에 당선되었을 정도로 함흥의 관계와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924년에 발행된 《개벽》에서 평양선우순과 비교되는 함흥 지역의 인물로서 "친일자 중 또 친일자"라고 평가받았을 만큼 일제 당국과 가깝게 지냈다.

1935년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1] 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자에는 김하섭이 "친일파의 중진"이라며 온후독실한 성격으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를 조정해준다는 인물평이 실려 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다. 이 무렵 조선임전보국단에 가담하고 조선농회에서는 통상의원을 맡는 등 총독부의 시국 정책에 적극 협력한 행적이 있다.[2]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부문에 모두 포함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7월 6일에 확인함. 
  2.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395,417쪽쪽. ISBN 89-9533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