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죽도왜성

(김해죽도왜성에서 넘어옴)

김해 죽도왜성(金海 竹島倭城)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에 있는, 임진왜란일본군(倭軍)이 쌓은 일본성곽(왜성)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1호 죽도성으로 지정되었으나, 일제지정문화재를 재평가해 등급을 조정하면서 1997년 1월 1일 사적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1999년 3월 9일 부산광역시의 기념물 제47호 김해죽도왜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일 띄어쓰기를 적용하여 김해 죽도왜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

김해 죽도왜성
(金海 竹島倭城)
대한민국 부산광역시기념물
종목기념물 제47호
(1999년 3월 9일 지정)
시대조선
위치
주소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 787번지 일원
좌표북위 35° 11′ 42″ 동경 128° 53′ 57″ / 북위 35.19500° 동경 128.89917°  / 35.19500; 128.89917좌표: 북위 35° 11′ 42″ 동경 128° 53′ 57″ / 북위 35.19500° 동경 128.89917°  / 35.19500; 128.89917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김해죽도왜성
(金海竹島倭城)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해지)
종목사적 제51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1997년 1월 1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죽도왜성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의 김해평야에 있는 성으로, '죽도성(竹島城)'이라고도 한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에 1593년 건립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은 왜성이다. 현재 김해 죽도왜성의 중심부 대부분은 공동묘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일부 밭으로 개간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죽림동 일대는 낙동강 하구로 죽도(竹島)를 제외하고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넓은 황무지였다. 죽도는 김해 육지로부터 공격하는 조선군(朝鮮軍)을 막거나 공격하고, 선박을 정박시켜 후퇴에 용이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왜장인 나베시마가 쌓은 것으로, 해발 35m의 낮은 구릉지 양쪽에 축조되었다. 제일 높은 곳에 소위 일본성의 양식인 본환(本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석재는 부근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먼 곳에서 육로 및 뱃길을 이용하여 운반한 것으로 보인다.

죽도왜성은 주변의 구포왜성, 양산왜성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어 김해 북쪽지역에서 내려오는 병력을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과 바다를 이용해 배로 다른 왜성들과 긴밀한 연락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현지 안내문편집

이 성은 강서구 가락동 가락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가락성', 또는 '죽도성'이라고 한다. 죽도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2]

가락산은 동서로 길게 뻗은 독립된 야산이다. 그 동단은 낙동강의 서쪽지류에 닿아 있어 선박을 정박시킬 수 있으며, 죽도는 김해부의 안산이었다. 서북면은 논으로 둘러 쌓여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나베지마가 쌓은 전형적인 일본식 성이다.[2]

이 성은 구포에 있었던 의성과 수로로 약 1.3km로 가까웠다. 두 성은 임진왜란시 일본군이 낙동강 하구를 지키는 방어의 요충이었다. 이울러 김해지방에 주둔했던 일본군의 본거리였으며, 이곳을 본성으로 하여 주촌면 농소리의 신답왜성과 생림면 마사리의 마사왜성이 지정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지형으로 보아서 김해 북쪽에서 내려오는 병력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요충일뿐만 아니라, 낙동강 지류를 이용하여 배로 구포나 물금의 왜성들과 연락을 할 수 있는 곳이다.[2]

성은 해발 35m의 구릉지에 축조되어 있다. 높은 곳에 일본식 성의 중심인 본환을 두고, 차례로 이환, 삼환을 구축하였다. 돌은 부근에서 구할 수 없어 원거리에서 해로를 이용하여 운반하였던 것 같다. 지금 길이 약 100m 정도의 성벽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일본식 성의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2]

한국문물연구원 해설편집

발굴조사지역은 지성부 일부로서 조사결과 2지환부터 8지환까지 모두 곡륜 8곳이 확인되었다. 이 중 2지환과 4지환에서는 굴립주 건물지가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3지환에서는 주혈 직경 25~30cm, 깊이 10~18cm, 간격 100~150cm가 사선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목책 흔적이 확인되었다.[2] 그리고 능선 아래쪽에 위치하는 9지환에서는 중심부로 진입하는 출입시설(虎口)이 확인되었다. 그 양쪽으로 8지환과 6·7지환이 위치하는데 출입부를 방어하는 시설로 추정된다. 7지환을 따라 주혈들이 확인되어 출입부로 진입하는 목책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부산광역시 고시 제2014-363호,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명칭 변경 고시》, 부산광역시장, 2014-09-03
  2.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