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양동리 고분군

김해 양동리 고분군(金海 良洞里 古墳群)은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에 있는 가야의 고분군이다. 1993년 12월 7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3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7월 2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5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
(金海 良洞里 古墳群)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종목사적 제454호
(2004년 7월 24일 지정)
면적51,826m2
시대가야
위치
김해 양동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김해 양동리
김해 양동리
김해 양동리(대한민국)
주소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등
좌표북위 35° 13′ 20″ 동경 128° 48′ 34″ / 북위 35.22222° 동경 128.80944°  / 35.22222; 128.80944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김해양동고분군
(金海良洞古墳群)
대한민국 경상남도기념물(해지)
종목기념물 제136호
(1993년 12월 7일 지정)
(2004년 7월 24일 해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 편집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대로부터 기원 5세기대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묘제와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 국가 형성기로부터 발전기의 역사적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김해지역 중심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은 곳으로서 1984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1996년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토기와 청동기, 철기 등 5,1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묘제의 변천과정과 연대 규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출토된 각종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완하여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伽倻)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가 가야철(伽倻鐵)의 전성기로서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하여 외래문물도 해로를 통해 직접 유입되었던 가야시대의 번성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생산이 가야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철시장의 상실로 인한 가치 하락이 가야쇠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김해양동리고분군은 그 발굴성과를 통해 각 시기별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 가야사회의 성장과 그 국가적 성격을 밝히는 귀중한 유적이라 할 것이다.

묘제 편집

양동리고분군의 묘제는 널무덤, 덧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덧널무덤, 유사돌무지덧널무덤 독널무덤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A.D. 1 ~ 5세기까지의 무덤이 순차적으로 조영되어 있어 가야시대 묘제의 기본변화양상 즉 널무덤->덧널무덤->돌덧널무덤의 변화양상을 확인해주었다.[1]

55호 널무덤은 A.D. 1세기말~2세기초의 유구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발굴 조사지역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대부분의 덧널무덤보다는 훨씬 깊게 조성되어 있어 파괴되지 않고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한데, 이 무덤의 중앙에서 요갱 시설이 확인되었다. 무덤구덩이 충전토 내부에서 쇠토끼, 쇠낫, 환형청동기, 와질토기 주머니항아리, 쇠화살촉 등이 출토되었으며, 널 내부에서는 유리구슬, 방제경, 환형청동기 철검 등이 출토되었다.[1]

162호 덧널무덤은 가야시대 최고에 속하는 대형덧널무덤으로 방형에 가까운 평면형태를 띠고 있다. 이 무덤에서는 철복 1점과 와질의 굽다리입큰항아리 1점을 제외하고는 용기류의 부장이 전무하다.[1]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가야무덤2,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참고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