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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양씨(南原 梁氏)는 제주 양씨에서 분적하여 전라북도 남원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남원 양씨 (南原 梁氏)
관향 전라북도 남원시
시조 양우량(梁友諒)
주요 중시조 양능양(梁能襄), 양주운(梁朱雲), 양수정(梁水精)
주요 인물 양진, 양백익, 양성지, 양연, 양헌수, 양일동, 양병호, 양정모, 양택식, 양춘근, 양극필, 양해준, 양종호, 양재권, 양승택, 양성철, 양경자, 양인평, 양건, 양정모, 양승조, 양기대, 양세형, 양세찬, 양팡
인구(2015년) 307,724명

목차

역사편집

제주 양씨 시조 양을나(良乙那)는 제주도에 탐라국(耽羅國)을 세웠다고 전한다.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들어오자 559년 진흥왕이 벼슬을 내리고 ‘良’을 ‘梁’으로 고치게 하였다.

남원 양씨 중시조 양우량(梁友諒)이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공을 세워 남원부백(南原府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제주 양씨에서 분적하였다고 한다.

남원 양씨(南原 梁氏)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6명을 배출하였다.[1]

분파편집

문헌의 실전으로 선계를 상고할 수 없어, 양능양(梁能襄), 양주운(梁朱雲), 양수정(梁水精) 을 각각 1세조 하여, 병부공파, 용성군파, 대방군파로 나뉘었다.[2]

인물편집

  • 양진(梁稹) : 고려 현종 때 예부상서·좌복야·상서좌복야
  • 양백익(梁伯益) : 고려 공민왕 때 개성윤(開城尹)으로서 흥왕사(興王寺)의 변에 공을 세워 1등공신에 오르고 우왕 때 찬성사상의(贊成事商議)에 올랐다.
  • 양천룡(梁天龍) :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1351~1374).불사이군의 충(忠)과 6년간 시묘살이[효(孝)]로 1442년(세종 23) 남원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 양성지(梁誠之) :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중추부사 ·공조판서를 거쳐 좌리공신에 오르고 대사헌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 양연(梁淵) : 양성지의 손자. 중종 때 공조참판·대사헌·좌승지·병조판서·이조판서·우참성·좌찬성·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 양헌수(梁憲洙, 1816년 ~ 1888년) : 양성지의 13대손.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을 지킨 공로로 한성부좌윤에 임명되었고 병조판서를 지냈다.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편집

인구편집

  • 2000년 218,546명
  • 2015년 307,724명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