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시(內資寺)는 호조에 속한 관서였다. 태조 1년 처음 설립 당시에는 내부시(內府寺)라 칭했으며 왕실재물을 넣어두던 부고(府庫)의 출납, 궁궐 내의 등을 밝히고 끄는 일을 담당하던 관서였으나,[1] 태종 1년(1401) 내부시를 내자시로 고치고,[2] 태종 3년 (1403) 에는 의성고를 내자시에 병합하여 이 관서의 기능이 왕실의 부고 뿐 아니라 왕실에서 사용되는 , 국수, , 간장, 기름, , 채소, 과일, 내연직조(內宴織造) 등도 관장하는 한편, 왕자를 낳은 왕비의 권초(捲草)를 봉안했다고 한다.[3] 1405년 육조직무를 나눌 때 호조에 소속 시켰다.[4] 내자시에 속한 관직으로는 판사(判事) 2명 정3품이고, 경(卿) 2명 종3품이고, 소경(少卿) 2명 종4품이고, 주부(注簿) 1명, 겸주부(兼注簿) 1명 종6품이고, 직장(直長) 2명 종7품이다.[1]

참고 문헌편집

각주편집

  1. 조선 태조 1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洪武) 25년) 7월 28일(정미) 4번째기사
  2. 태종 2권,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7월 13일(경자) 2번째기사
  3. 태종 5권, 3년(1403 계미 / 명 영락(永樂) 1년) 6월 29일(을해) 1번째기사
  4. 태종 9권, 5년(1405 을유 / 명 영락(永樂) 3년) 3월 1일(병신)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