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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친스크 조약(러시아어: Нерчинский договор, 만주어: ᠨᡳᠪᠴ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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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bcoo-i Bade Bithe, 중국어: 尼布楚條約)은 시베리아 자바이칼 지방 네르친스크(尼布楚, 니포초)에서 1689년 8월 27일 청 제국루스 차르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목차

배경편집

17세기 중엽 러시아는 헤이룽강(黑龍江, 아무르강)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네르친스크, 알바진 등에 성을 구축하고, 청나라와 충돌하였다.(청-러시아 국경 분쟁)

청나라는 중국 대륙을 점령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정비에 바빴고, 삼번의 난 등으로 인해 여력이 없어서 한동안 러시아 세력의 남진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한편 러시아는 청과의 통상을 목적으로 여러 차례 베이징에 사절을 보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청은 1681년 삼번의 난을 진압한 후 러시아에 본격적으로 반격하기 시작했고, 1685년에는 헤이룽 강 북안의 알바진성을 함락시켰다. 이에 네르친스크로 후퇴한 러시아가 알바진성을 되찾고, 청이 다시 공격하던 중에 휴전이 성립되었다. 그 결과, 청의 전권 대신과 러시아 전권 대신 사이에 조약이 조인되었는데, 이것이 네르친스크 조약이다.

조약 내용편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헤이룽강지류아르군강·케르비치강외싱안링 산맥(外興安嶺, 스타노보이 산맥)을 양국간의 국경으로 하고, 알바진성은 파괴할 것
  2. 월경자의 인도와 처벌
  3. 양국 민간인 사이의 통상의 자유

성격편집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 조약은 청 제국과 러시아가 서로 '대등한 위치'를 가지고 조약을 맺은 것인데, 많은 이들이 아편 전쟁 후의 '불평등 조약 체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평등 조약'인 것에 주목하지 캬흐타 조약이 왜 만주어로 기록되었는지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캬흐타 조약의 기록을 만주어로 남겼냐 하면, 캬흐타 조약이 평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중국적 화이(華夷)개념에 따르면 '이(夷)'인 러시아와 맺은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어야 한다. 천자의 나라인 중국이 상위, 러시아가 하위인 조약이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중가르 칸국 문제의 해결에 쫓기던 청 제국은 러시아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할 수 없었고, 결국 캬흐타 조약은 평등 조약이 되었다. 즉, 중국적 중화 세계 개념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조약이기에 캬흐타 조약의 기록은 한문 기록이 전무하고 만주어로만 기록되었으며, 조약의 체결 자체에도 한족 관리는 참여하지 못했다. 이는 청조가 캬흐타 조약에 대한 한문 기록에서는 '대등'이나 '평등'을 연상케하는 구절이나 어휘를 없애거나 모호하게 만든 것에서도 입증된다.[1]

결과편집

청나라러시아와의 분쟁 전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헤이룽강(아무르강)의 북쪽과 외싱안링 산맥의 남쪽 사이의 땅에 대한 영토권을 확립하였고,[2] 러시아는 청나라와의 무역을 보장받게 되었다.

이 조약으로 두 나라는 북만주의 경계를 정하였고, 이후 외몽골과 시베리아 사이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1727년 캬흐타에서 추가로 조약(캬흐타 조약)을 체결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구범진,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제4장 청 제국과 러시아, 민음사
  2. 청나라는 1858년 체결된 아이훈 조약으로 강동육십사둔을 제외한 헤이룽강의 북쪽을 전부 러시아에 내주었고, 1860년에 체결된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까지 러시아에 넘겨주었다.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