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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형(盧自亨, 1414년 ~ 1490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전라도 장흥(長興) 출신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1]

노자형은 성품이 경개(耿介)하고 학술(學術)이 순정(醇正)한데, 일찍이 작은 병으로써 벼슬을 사양하고 영진(榮進)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그 이름을 듣고 불러서, 1477년(성종 8)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에 임명하여 후진을 가르치게 하니, 성취한 바가 많았다. 여러 벼슬을 거쳐 1482년 통정대부(通政大夫)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다. 만 70살의 나이로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가 왼쪽 다리로 걷기에 불편한 병이 있다는 이유로 한가로운 벼슬을 받아 수양하였다. 1488년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2] 1489년 벼슬을 버리고 전리(田里)로 돌아가자 관생(館生)과 진신(搢紳)으로서 일찍이 수업(受業)한 자가 동쪽 교외(郊外)에 나와서 전송하는데, 관개(冠蓋)가 가득하게 넘치니, 당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3]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