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설(盧鎭卨[1], 1900년 ~ 1967년)은 대한민국의 제2대 감찰위원장을 역임했다.[2] 본관은 광주.

1948년 3월 미 군정청 군정장관 딘 소장으로부터 5·10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으며, 정부 수립 이후 대법관으로 위당 정인보의 뒤를 이어 감찰위원장에 취임하였다. 노진설은 감찰위원장 재직 중, 반민특위에서 악질 일제 형사 출신에게 첫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하였다.[2]

1948년 6월 1일 헌법기초위원회 전문위원에 선임되었다.[3]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秘話 第一共和國 <8> 第二話 憲法制定에서 組閣까지”. 동아일보. 1973년 4월 19일.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고운기 (2006년 8월 17일). “<푸른광장> 초대 감찰위원장 정인보”. 문화일보. 
  3. '헌법기초위원회' - 네이트 백과사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전임
정인보
제2대 감찰위원회 위원장
1949년 7월 22일 ~ 1952년 9월 21일
후임
이광
전임
함태영
제3대 심계원장
1952년 9월 22일 ~ 1956년 9월 30일
후임
최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