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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후보 경선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후보 경선200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열린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민 참여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민주당 후보 경선


1997 ←
2002년 3월 9일~4월 27일
→ 2007

투표율 58.5%
  Roh Moo-hyun - cropped headshot, 2004-Oct-26.jpg Jungdongyoung2007.jpg
후보 노무현 정동영
득표 17,568 6,767
득표율 72.2% 27.8%

선거전 대통령 후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 당선자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국민 참여 경선제의 필요성은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돼 왔으나, 실제로 성사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또한 당내 주류의 지원을 받던 이인제, 한화갑 등의 거물들이 아닌 비주류의 노무현 후보가, 그것도 일반 국민들의 열성적인 지지로 당선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당 주류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향의 후보가 선출된 결과 2년 후 당이 분당되는 비극의 서막이 되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는 제3회 지방 선거에서의 민주당의 참패로 인한 책임론,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 압박 등으로 중도 사퇴할 위기를 겪었으나, 결국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경과편집

후보로는 노무현을 비롯해 김근태, 김중권, 유종근, 이인제, 정동영, 한화갑 등이 후보로 출마하였다.

이인제-노무현 양강 구도편집

경선 시작 전에 민주당 후보 중 부동의 지지율 1위는 동교동계의 후원을 받는 이인제였고, 노무현은 지지율이 한 자릿수인 군소 후보였다. 그러나 경선 국면이 시작되면서 노무현은 “영남 후보론” 및 이인제 후보를 겨냥한 “정체성 시비” 등을 제기하며 20%대 지지율에 진입하기 시작했다.[1]

첫 번째 지역이었던 제주 경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노무현은 이인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으나, 정작 제주 경선 결과 한화갑 후보가 의외의 1위를 차지했고, 이인제·노무현은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두 번째 울산 지역에서는 울산과 같은 경남권 출신인 노무현이 예상대로 1위를 차지했다.

노무현 바람편집

그러던 중 3월 13일, 문화일보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노무현과 이회창이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노무현이 41.7%, 이회창이 40.6%로 노무현이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 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 뒤지는 결과가 나온 것은 대선 구도가 형성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2] 이 여론조사 결과가 알려지자 3월 16일 광주에서 열린 세번째 순회 경선에서 노무현은 이회창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기대 속에 반전의 1위를 기록했다. 광주는 김대중 대통령과 새천년민주당의 근거지인 만큼 이곳에서의 승리는 의미가 있었다.[3]

이후 노무현은 단숨에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노풍’의 주인공이 되었다. 광주 경선 직후 이인제의 지역 기반인 대전·충남권에서 일격을 당해 노풍이 꺾이는 듯싶었지만 강원, 경남, 전북, 대구 경선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다시 역전했다. 이후 노무현은 충청 지역 경선을 제외한 모든 경선에서 승리헸고, 2002년 4월 27일, 서울 경선을 끝으로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경선이 끝난 4월 말 노무현의 지지율은 당시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사상 최고치라는 60%를 기록했다.[1]

경선 방식편집

일명 16부작 정치 드라마로 불렸던 국민 경선제는 2002년 3월 9일 제주를 필두로 전국 16개 시도를 도는 식으로 진행됐다. 대의원 20%, 일반 당원 30%, 국민 50%의 비율로 계산됐다. 투표 방식은 선호투표제를 도입하여, 모든 후보를 1위부터 최하위까지 번호를 매기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졌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가 과반 득표에 성공해 선호 투표는 있으나마나 하게 되었다.

사상 초유의 국민 참여 경선에 대한 관심이 집중돼 3만5000명을 추첨으로 뽑는 국민 선거인단 모집에는 190만여 명이 신청했다.

후보자편집

최종 후보편집

  • 노무현해양수산부 장관은 4월 27일 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 정동영 의원은 상위권에 들 것이란 초반의 예상과 달리 연속해서 저조한 득표율을 보였으나,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된 후에도 사퇴하지 않고 '경선 지킴이'로 남았다가 4월 27일 전당대회에서 최종 2위로 확정되었다.

중도 사퇴 후보편집

  • 이인제경기지사는 전남 경선 직후 더 이상 역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4월 17일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4] 그는 당에서 자신을 탈락시키고 노무현을 당선시키려 공작을 했다는 음모론을 펼치며 탈당하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 김중권대통령 비서실장은 대전, 충남 지역 경선에서 나타난 동향 후보 몰표 주기에 실망했다며 3월 25일 후보직을 사퇴했다.[5] 일각에서는 경상북도 출신인 그가 노무현을 밀라는 모종의 지시에 따라 영남 표를 몰아주기 위해 사퇴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 한화갑 의원은 광주 경선 패배 후 "호남 후보 불가론을 정면돌파하려 했으나 아직은 제가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3월 19일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6] 동교동계 맹주로써 활약이 예상되던 그였으나, 권노갑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한화갑이 아닌 이인제를 지원하고 있던데다 영남 출신인 노무현에게 동교동계의 텃밭인 광주를 내주는 충격까지 당해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졌던 것이다. 이후 한화갑 의원은 당 대표 선거 출마로 선회, 4월 27일 당 지도부 선출 및 대통령 후보 확정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되었다.
  • 유종근전북지사는 3월 11일 세풍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스캔들이 터지자 "수뢰사실은 없으나 국민 참여 경선제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고, 주변의 사퇴압력도 적지않다"며 3월 14일 후보 사퇴 및 탈당 선언했다.[7]
  • 김근태 의원은 첫 두 경선에서 연속 저조한 결과가 나오자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3월 12일 경선 포기를 선언하였다.[8]

결과편집

새천년민주당은 4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노무현 전 해수부 장관을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하였다.

김중권 노무현 정동영 김근태 이인제 한화갑 유종근 합계
제주    55      125     110    16      172      175   18                     
울산      281       298    65   10      222     116    20                      
광주     148     595   54 사퇴    491     280 사퇴             
대전    81      219    54      894    77               
충남   196     277    39       1,432 사퇴            
강원    159     630   71      623           
경남 사퇴       1,713    191    468          
전북     756     738     710          
대구     1,137   181      506          
인천      1,022     131     816          
경북      1,246     183     668           
충북     387     83     734          
전남      1,297     340      454            
부산     1,328     796 사퇴       
경기      1,191    1,426       
인터넷      1,423     327         
서울       3,924     2,305         
총합 사퇴      17,568       6,767 사퇴 사퇴 사퇴 사퇴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현재 (2002년 12월 19일). “盧당선자 대선장정 1년7개월”. 연합뉴스. 2010년 4월 22일에 확인함. 
  2. 김현재 (2002년 3월 13일). “선호도 노무현 41.7 이회창 40.6%”. 연합뉴스. 2010년 4월 22일에 확인함. 
  3. 신종수 (2002년 3월 16일). “[민주 ‘光州 경선’ 의미] 노무현 대안론 ‘대세’잡나”. 국민일보. 2011년 11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4월 22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4. 입력 2002.04.17 00:00 (2002년 4월 17일). “이인제후보 경선 전격사퇴”. 2019년 3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3월 28일에 확인함. 
  5. 입력 2002.03.25 17:00 (2002년 3월 25일). “김중권 후보사퇴로 민주당 경선 새국면”. 2019년 3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3월 28일에 확인함. 
  6. “한화갑 고문 대선후보 경선사퇴 : 정치 : 인터넷한겨레 The Hankyoreh”. 2019년 3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3월 28일에 확인함. 
  7. 전, 승현 (2002.03.14). “유종근씨 탈당.경선포기”. 《MK뉴스》. 2019년 3월 28일에 확인함. 
  8. “김근태씨 후보 사퇴 - 매일경제”. 2019년 3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3월 28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