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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음법칙(頭音法則)은 일제 강점기 시대(1910~1945년)에 법으로 규정한 법칙이다. 1921년에 개정된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을 보면 "한자음의 두음이 'ㄹ'인 것은 발음의 여하를 불구하고 항상 'ㄹ'을 그대로 쓴다.(보기 : 란초, 룡산, 리익)"고 하여 두음 법칙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4장의 '한자음' 규정을 보면 두음 법칙이 적용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음법칙이 제정된 근거 중의 하나로 한국의 가변적인 음운 현상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15세기의 경우 어두에 ㄹ로 시작하는 순우리말 단어가 2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두에 ㄹ이 왔을 경우 사람들이 ㄴ으로 표기하기도 하였고 어두에 ㄴ이 오는 단어를 거꾸로 ㄹ로 표기하는 등 어두에서의 'ㄴ'과 'ㄹ'음을 구별하지 못하였다. [1]

러울(훈민정음 해례, 1446년)→넝우리(훈몽자회, 1527년), 라온(묘법언화경언해, 1463년)→나온(분류두공부시언해, 1481년), 라귀(석보상절, 1447년)→나귀(분류두공부시언해, 1481년), 나(용비어천가, 1447년)→라(권념요록, 1637년), 나다(용비어천가, 1447년)→라다(동국신속삼강행실도, 1617년), 로하다(번역소학, 1517년)→노하다(신증유합, 1576년), 능히(구급방언해, 1466년)→릉히(분문온역이해방, 1542년), 낛(훈민정음 해례, 1446년)→락시(신증유합, 1576년), 날(용비어천가, 1447년)→랄(동국신속삼강행실도, 1617), 럼나다(악학궤범, 1493년)→넘나다(여사서, 1737년), 넘다(석보상절, 1447년)→럼다(신증유합, 1576년), 놀라다(용비어천가, 1447년)→롤라다(신증유합, 1576년), 놀애(용비어천가, 1447년)→롤애(신증유합, 1576년), 느릅나모(훈몽자회, 1527년)→르릅나모(역어유해, 1690년), 늙다(용비어천가, 1447년)→를금(분류두공부시언해,1481년), 렴통(구급방언해, 1466년)→념통(훈몽자회, 1527년), 남진(석보상절, 1447년)→람진(칠대만법, 1569년)[2]

위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15세기에는 한자의 원음이 ㄹ이어도 사람들이 ㄹ음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두에서 'ㄹ'음과 'ㄴ'음이 변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18세기 후반에 와서는 어두에 ㄴ이 오는 단어를 ㅇ으로 착각하여 표기한 예도 발견이 되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님자→임쟈(경신록언석, 1796년) 1개가 있으며 20세기 초반인 일제 강점기때부터는 많이 등장한게 된다.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년에 집필된 조선어사전을 보면 녀름(한영자전, 1890)→여름(조선어사전, 1920), 녑구레(한불자전, 1880)→엽구리(조선어사전, 1920), 님금(한영자전, 1890)→임금(조선어사전, 1920), 닙(葉(한불자전, 1880)→입(조선어사전, 1920)(葉), 니(한영자전, 1890)→니/이(齒)(조선어사전, 1920) 니마(한영자전, 1890)→니마/이마(조선어사전, 1920), 니야기(한영사전, 1890)→이야기/니야기(조선어사전, 1920), 닐곱(한영자전, 1890)(七)→ 일곱/닐곱(조선어사전, 1920), 닐흔/일흔(한불자전, 1880)→일흔/닐흔(조선어사전, 1920), 념통(한영자전, 1890)→염통/념통(조선어사전, 1920), 닙다(한불자전, 1880)→입다/닙다(조선어사전, 1920), 닛다(한불자전, 1880)→잇다/닛다(조선어사전, 1920) 등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두에 ㄴ이 오던 단어가 '여름'이나 '엽구리'의 예처럼 완전히 ㅇ으로 표기법이 바뀌어 있거나 ㄴ/ㅇ의 2가지 방식으로 표시되는 등 표기법이 획일화 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3]

두음법칙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대대손손 써오던 성명 표기에게까지 두음법칙을 적용시키는 것은 사실상 성을 갈은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두음법칙으로 인해 표기법이 가장 많이 바뀐 성씨인 이씨(李)의 한글 표기법은 두음법칙이 제정되기 이전의 1400~1900년대 왕명으로 간행된 문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리'나 '니'로 수백년간 표기되어 왔다. '이'라고 표기된 예는 공적인 문서에는 발견이 되지 않으며, 18세기 중반에 집필된 박리화(朴履和)의 만고가(萬古歌)에 최초로 이태백(李太白)으로 등장하며, 19세기 후반에 출판된 烈女春香守節歌(열녀춘향수절가)에도 이할임(李翰林)으로 등장하나 모두 문학 작품이다. 즉 표기법이 실제 발음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발음에 맞춰서 표기법을 바꾸는 것은 성을 바꾼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4] 실제로 류씨의 경우에도 두음법칙으로 인한 성씨 표기 변경이 역사적으로 써오던 표기법과 발음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소송을 걸어 승소하였다.

두음법칙이 첫소리 [ㄹ]로 시작하는 많은 한자어와 한글을 소멸시켰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리어], [링어]→[잉어]로 되어버렸고, [로새]는 [노새]로, [란초]는 [난초]로, [룡병]은 [문둥병]이 되는가 하면, [량태]는 대로 만든 울타리를 뜻하는 낱말이었는데, 이 낱말도 두음법칙과 함께 사전에서마저 사라졌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자신이 원래부터 쓰는 성명에 첫소리를 제한한 두음법칙이 [ㄹ]을 [ㅇ]이나 [ㄴ]으로 바꾸라고 한다면 그 성명이 과연 올바른 소리이고, 표기냐는 문제이다. 李와 異의 경우 두음법칙 이전에는 [니]와 [이]로 서로 발음과 표기법이 달랐는데 두음법칙이 적용되게 되면서 표기법과 발음이 [이]로 똑같이 되어 버렸다. 즉 일각에서는 본래 표기와 발음이 달랐던 성이 똑같이 [이]로 발음되게 된다면 성씨를 바꾸는 것, 즉 조상을 바꾸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며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두음법칙을 표기에 반영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러 학자들은 파생어, 합성어의 제 2음절 이하에까지 두음법칙을 적용시키는 것은 지나친 확대 적용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또한 두음법칙이 적용된 이후 표기법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녀석’은 되는데 ‘녀자’는 ‘여자’로 고치라고 말한다. 또 ‘그럴 리가 없다’라고 할 때 사용된 ‘리’는 한자 ‘理’인데 한자 첫소리의 ‘ㄹ’은 ‘ㅇ’소리로 표기하라는 두음법칙은 이 대목에서는 또 예외이다. 즉, 두음법칙에 예외사항이 너무 많아 일반인들이 학습하기에는 불편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 두음법칙을 쓰지 않기 때문에 추후 통일할 때 문화적 차이 등의 이유로 두음법칙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몇 가지 조건들을 제외하고는 두음 법칙을 인정하는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화어에서는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두음 법칙을 기본적으로 제정하지 않았고, 한자 원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두음 법칙으로 성씨 표기법이 바뀐 성씨 명단편집

두음 법칙으로 인해 성씨 표기법이 바뀐 인구는 전체 인구의 23% 정도인 1100만명이다. 이 중에 대부분은 780만명의 李(리) 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한국에서 두음 법칙으로 인해 성씨 자음이 바뀐 대표적인 성씨로는

  • 니씨(李)(니→이)[주 1]
  • 류씨(柳)(류→유)
  • 류씨(劉)(류→유)
  • 림씨(林)(림→임)[주 2]
  • 량씨(梁)(량→양)[주 3]
  • 로씨(盧)(로→노)
  • 련씨(連)(련→연)
  • 라씨(羅)(라→나)
  • 륙씨(陸)(륙→육)
  • 렴씨(廉)(렴→염)
  • 려씨(呂)(려→여)[주 4]
  • 룡씨(龍)(룡→용)

등이 있다. 반면, 윤씨(尹), 오씨(吳), 안씨(安), 임씨(任), 양씨(楊), 여씨(余) 등은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그런데 2007년 8월 1일부터 대법원이 성씨를 한글로 표기할 때 한글 맞춤법의 두음 법칙에 따라 적도록 했던 호적 예규를 고쳐 두음 법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개정 예규를 시행하도록 했다.

한국어에서의 두음 법칙편집

표준 한국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음 법칙의 예로 ''이나 ''이 어두에서 조건에 따라 변형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두음 법칙이 한국어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매우 많은데, 대한민국의 공문서에서 성씨 를 '유'씨로 표기하도록 강제하는 것[주 5]이 대표적이다.

특히 ''과 ''의 두음 법칙은 한자음에서 두드러지는데 초성이 'ㄴ'이나 'ㄹ'인 한자음이 단어 초나 음절 초에 올 때(단어 중간의 음절에 두음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나 ''으로 바뀐다. 두음 법칙이 적용된 발음은 한글 표기에도 반영된다.

두음 법칙이 관찰되는 조건편집

  • ㄴ이나 ㄹ이 ㅇ으로 바뀌는 경우
    • 한자음 '녀, 뇨, 뉴, 니, 랴, 려, 례, 료, 류, 리' 등 또는 +로 시작하는 이중모음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 '여, 요, 유, 이', '야, 여, 예, 요, 유, 이'로 발음한다.
    • 한자음 '라, 래, 로, 뢰, 루, 르' 등 +를 제외한 단모음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 '나, 내, 노, 뇌, 누, 느'로 발음한다.
  •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발음한다.

예를 들면 '림'(林)은 '임'으로, '로'(路)는 '노'로, '념'(念)은 '염'으로 발음하고, '라렬'(羅列)은 '나열'로 발음한다. 이러한 두음 법칙은 외래어, 외국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 한자 파생어나 합성어 등은 뒷말에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 신여성(新女性), 공염불(空念佛), 회계연도(會計年度) 등.
  • 고유어나 외래어 뒤에 한자어가 결합한 경우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 구름-양(量) = 운량(雲量) , 칼슘-양, 어린이-난, 가십-난(gossip - 난) 등.

두음 법칙이 관찰되지 않는 조건편집

  • 단어의 첫머리 이외에서 본음대로 적는다.
    • 남녀(男女), 은닉(隱匿), 독자란(讀者欄), 비고란(備考欄), 공란(空欄), 답란(答欄), 투고란(投稿欄) 등
  • 의존명사는 본음대로 적는다.[5]
    • 냥(兩), 년(年), 리(里), 리(理), 량(輛)
    • 몇 냥, 몇 년, 거기까지 몇 리냐?, 그럴 리가 없다., 객차 오십 량 등
  • 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
    • (조선시대 장수) 신립(申砬).
  • 반대로 이름이 외자가 아닌 경우에는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두음 법칙이 관찰되는 방언편집

두음법칙은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에 정해진 것이라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도 분단 초기까지는 두음법칙을 잠깐 고수하였지만, 얼마 안 가서 두음법칙을 폐지하였다.

북한의 문화어한국어의 방언인 중국조선말재일어에서는 한자계 어휘에 대한 [r] [l] [nj] 자음의 두음 법칙을 대부분 찾아볼 수 없다. 단, 북한에서는 라사(羅紗)를 나사로, 라팔(喇叭)을 나팔로, 료기(療飢)를 요기로 쓰고 있는 등, 일부 한자어는 변한 소리대로 적는 것으로 언어 현실을 반영, 두음 법칙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5]

현대 한국어에서는 대한민국(남한)의 표준어와 남한 내의 방언에서 이런 두음 법칙이 주로 관찰된다.

두음 법칙의 예외 규정편집

법률이 개정되면서 두음법칙의 예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예외 규정의 한 예로 성(姓氏)에 관한 것인데 신청절차를 거치면 李씨는(이→리씨), 林씨는 (임→림씨), 柳씨는 (유→류씨)등으로 변경할 수 있다.

두음 법칙에 대한 비판편집

두음법칙은 국내에서도 성씨(姓氏) 표기 등을 예외로 인정하면서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7년 ‘호적에 성명을 기재하는 방법’ 제2항을 개정과 동시에 ‘호적상 한자 성의 한글 표기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하면서, “한자 성(姓)의 한글표기에 두음법칙의 예외를 인정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성과 이름에 두음법칙을 강제하는 것이 ‘국민행복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 두음법칙은 수많은 동음이의어를 양산해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예를 들면 양산(陽傘)과 량산(量産), 이론(異論)과 리론(理論), 역학(易學)과 력학(力學) 등 원래 이 단어들은 이런 식으로 구분돼 있었다. 그러나 두음법칙으로 인해 위 6개의 단어는 양산, 이론, 역학의 3개로 깔끔하게 통일되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소리가 바로 의미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음이의어뿐만이 아니다. 두음법칙의 영향 때문인지, 원래 ㄹ 소리가 존재하지 않던 한자인 諾에 대해서도 ‘허락’과 ‘승낙’ 같은 쓸데없는 예외가 생겨나는 등 한국어의 기능성과 논리성이 두음법칙으로 인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두음법칙의 폐단은 고유명사나 약어를 표기할 때 제일 많이 나타난다. 2004 년 용천(룡천) 기차역 참사 때 방송에서 ‘룡천’과 ‘용천’으로 제각각 적어 보도하게 되면서 다른 나라의 지명의 경우 두음법칙에 따라서 적용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등의 복잡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음법칙은 합성어의 경우에도 예외가 쓸데없이 많다. ‘민주노동당’을 ‘민로당’으로 줄여 쓰고 ‘남자여자’를 ‘남녀’라고 쓰는 것을 보면 합성어에서는 두음법칙이 일관성 있게 비켜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신여성’, ‘남존여비’, ‘분노’, ‘희로애락’ 같은 단어를 보면 또 두음법칙이 적용되어 있지 않다.

두음법칙은 멀쩡한 사람의 성씨도 바꾸었다. 중국의 당나라 태종 ‘리세민’은 두음법칙으로 이씨 성으로 바뀌어 ‘이세민'이 되었고, 당나라 문인 ‘류종원’은 유씨 성으로 바뀌어 이제 ‘유종원’으로 불린다. 원말 명초의 소설가 ‘라관중’은 나씨 성으로 바뀌어 현재는 ‘나관중’으로 둔갑되었다. 삼국 시대 촉한의 ‘현덕−류비'는 고인이 된지 1,800여 년 만에 ‘유비’로 불리게 되었다. ‘사람 중에 려포요,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할 정도로 무용이 뛰어났던 맹장 ‘려포’는 성씨가 ‘여포’로 둔갑이 되었다. 수호전의 경우 ‘로지심’은 ‘노지심’으로, ‘림충’은 ‘임충’으로, ‘로준의’는 ‘노준의’로, ‘리규’는 ‘이규’로, ‘구문룡’은 ‘구문용’으로, ‘류당’은 ‘유당’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의 임득명, 임백령, 대한 제국 때의 의병장 임병찬의 성씨도, 조선 명종 때의 임꺽정의 성씨도 두음 법칙이 나오기 전에는 모두‘림득명’, ‘림백령’, ‘림병찬’, ‘림꺽정’이었다. 생전의 여러 ‘림씨’가 사후에 선대조상을 떠나 ‘임씨’ 댁에서 떠돌아다니는 망령음귀가 되었다. 실제로 대법원에서도 2007년에 두음법칙이 성씨의 표기법을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선례가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내용주편집

  1. 異(이)씨와 伊(이)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2. 任(임)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3. 楊(양)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4. 余(여)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5. 이러한 표기 원칙을 따르고 싶지 않다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씨의 한글 표기'를 정정하여 줄 것"을 사법부에 요청하는 등, 당사자나 당사자의 직계존속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의를 제기해야만 한다.

참조주편집

  1. 조규태(2009)
  2. 조규태(1999)
  3. 조규태(1999)
  4. 李자를 ‘니’로 표기한 예: 왕명으로 추진한 공적인 사업으로 간행된 문헌이나 기타 중요한 문헌을 보면 거의 다 ‘니’로 표기되어 있다. 특히 조선왕조 말기인 開化期 때 나온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인 ‘독립신문’에도 ‘니’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때 開化期 때까지도 일반적으로 ‘李’ 자를‘니’로 표기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杜詩諺解 初刊本 (성종 12년 : 1481) - “셩이 니가 (姓李的)“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 訓蒙字會 [중종 22년(1527). 아동에게 한자의 音과 뜻을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지은 책] - ’李’ 자의 音과 뜻을 ‘외엿니’ 라고 기록함. (참고로 ‘柳’ 자는 ‘버들류’로 기록되어 있음.)
    • 東國新續三綱行實 [광해군 9년(1617)에 왕명에 의하여 국가 사업으로 편찬된 孝子, 忠臣, 烈女의 기록집] - 李壽慶(니슈경), 李慶男(니경남), 李宅仁(니?인) 등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 癸丑日記 (光海君 때, 仁穆大妃 內人) - 니이첨(李爾瞻) 니덕형(李德馨) 니?복(李恒福) 등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 古時調集 南薰太平歌 - [純祖 때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됨. 作者 未詳의 時調] “옛날에 니??도”, “그곳에 니젹선(李謫仙) 소동파” 등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한글로 된 小說에 있는 ‘니’씨 姓 표기들:
    • 春香傳 - “젼나도 남원부? 니등이 ? 아?을 두어스니“ 등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 九雲夢 - “니쇼화(李蕭和)은 황졔의 ?이니” 등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 意幽堂集 - “니번은 뉼곡 형이라 파쥐예 잇더니 서울 드러와“, “니상국 탁은 셩묘됴 명신이라“ 등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 獨立新聞 창간호 - [1896년 4월 7일 창간.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 관찰사 니건하, 문쳔 군슈 니한용, 회계원 출납과장 니용교 등 ‘李’자를 모두 ‘니’로 표기함.
    ‘李’ 자를 ‘링'과 ‘리’로 표기한 예: 조선왕조 초기에도 간혹 용례가 있지만 주로 후기에 많이 나타난다.
    • 內訓 - 李링氏씽女녕戒갱예 닐오? (선조) - '李'자를 ‘링‘으로 표기함.
    • 東國正韻(上聲. 5권 16장) - '李'자를 ‘링‘으로 표기함.
    • 三韻聲彙(영조 27년 : 1751년) - '李'자를 ‘리’로 표기함.
    • 李鳳雲의 국문정리 서문 (1897) “리봉운 ?셔(李鳳雲 自序)” - '李'자를 ‘리‘로 표기함.
    • 兪吉濬의 朝鮮文典 (1906) “리슌신(李舜臣)은 인명이니”- '李'자를 ‘리’로 표기함.
    • 崔南善의 新字典 (1915) - '李'자를 ‘리’로 표기함.
    李자를 ‘이’로 표기한 예: ‘李’ 자를 ‘이’로 표기한 용례는 많지 않다. 주로 문학 작품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 歌辭 作品 - 朴履和(박리화)의 萬古歌 “이??(李太白)" (18세기) - '李'자를 ‘이’로 표기함.
    • 烈女春香守節歌 “잇? 삼쳔동 이할임(李翰林)이라 하난 양반이 잇스?” (19세기 후반) - '李'자를 ‘이’로 표기함.
  5. “겨레말 큰사전 - 남녘말 북녘말”. 2013년 5월 2일. 2013년 9월 23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