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폴란드와 프랑스의 영화 감독

로만 레이먼드 폴란스키(영어: Roman Raymond Polanski, 폴란드어: Roman Rajmund Polański, 1933년 8월 18일 ~ )는 프랑스 출신 폴란드영화 감독이다. 본명은 라이문트 로만 리플링(Rajmund Roman Liebling)이다.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2013 칸 영화제에서
본명Roman Polanski
출생1933년 8월 18일(1933-08-18)(88세)
프랑스 파리
국적폴란드의 기 폴란드
프랑스의 기 프랑스
다른 이름라이문드 로만 리에블링
Rajmund Roman Liebling
직업영화 감독
활동 기간1955년-현재
배우자바바라 라스
(1959년 결혼; 1962년 이혼)

샤론 테이트
(1968년 결혼; 1969년 사별)

에마뉘엘 세니에르
(1989년 결혼)
자녀모르강 폴란스키 (딸)
엘비스 폴란스키 (아들)

<피아니스트>, <올리버 트위스트>, <장교와 스파이>, <차이나타운> 등의 작품을 발표해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세계 영화사의 거장 중 1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유년 시절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 1969년 발생한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과 1970년대 아동 성범죄 사건 등 여러 비극적인 사건에 연루되며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삶을 산 감독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1962년 폴란드에서 <물속의 칼> 의 감독, 연출을 맡으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해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철의 사나이>,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세 가지 색:블루>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영화계에서 인정받았다. 1968년 영화 배우 샤론 데이트와 결혼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하였으나, 1969년 찰스 맨슨의 사교집단 맨슨 페밀리에 의해 샤론 데이트를 포함 그의 지인 5명이 살해당했다. 폴란스키는 당시 유럽으로 출장 차 출국해 자리를 비워 화를 면했다. 맨슨 페밀리의 수장인 찰스 맨슨과 주동자 수전 앳킨스를 포함해 사건에 연루된 맨슨 페밀리 일원 전원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던 1977년, 캘리포니아에서 13세 여성 사만다 가이머의 집에서 가이머에게 수 차례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어 아동 성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1차 재판에서 사법거래를 통해 유죄를 인정한 그는 42일간 보호관찰을 받고 일시석방 되었으나, 이 후 중형선고가 불가피해지자 1978년 프랑스로 도피하였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유럽에서만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러던 2009년 9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스위스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가택연금 되었으나, 스위스 정부는 미국의 신분 인도 요청을 거절하고 그를 석방했다. 폴란스키는 이 후에도 유럽에서만 작품활동을 계속해왔으며 2016년 피해자인 사만다 가이머에게 사건 종결을 탄원했으나 미국 경찰은 사건종결 불가 입장을 밝혔다.

2017년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 폭로로 공론화된 미투 운동의 여파로 그의 아동 성범죄 이력이 재조명되었고, 결국 폴란스키는 2019년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영구제명되었다. 또한 1977넌 사건 뿐 아니라 미투 운동 과정에서 폴란스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자가 나와 논란이 되었으며, 2020년 2월 <장교와 스파이> 로 세자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는 시상식장 밖에서 폴란스키의 수상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사건편집

폴란스키 가 살인사건편집

1969년 8월 9일 로만 폴란스키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로만 폴란스키의 집을 습격했다. 사실 그들은 그 집에 로만 폴란스키가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으며, 그 이전의 거주자가 찰스 맨슨의 음악에 대해 형편없다고 비난한 사람이었는데 로만 폴란스키의 가족을 그 사람의 가족으로 오인하고 습격하여, 당시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였던 샤론 테이트를 비롯하여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몰살시켰다.[1] 나중에 범인들이 체포되었으며 주동자인 수전 앳킨스은 종신형을 선고받아, 38년 동안 복역하다가 감옥에서 사망했다.

작품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